어제는 3년 6개월 된 핸드폰 바꾸느라 오후 내내 sns를 떠나 있었던 바람에 윤석열 씨 ‘손바닥 왕(王)자’ 뉴스를 밤늦게야 접했다. 복잡한 감정이 차례차례, 나중에는 온통 뒤섞여서 웃을 수도 울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이것이 진짜 뉴스일 리는 없고 누군가 윤 씨를 조롱하려고 만든 가짜뉴스 아닌가 싶었다. 진짜 뉴스임을 확인하고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정치인들이 원래 점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 들었다. 예전에 어떤 거물 정치인이 매일 아침 점을 보고 일정을 정하는데 하루는 대문이 없는 동쪽으로 출입해야 한다는 점괘가 나오자 동쪽 담에 사다리를 놓고 넘어 당 사무실에 출근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었던 기억이 났다.
웃다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무지한 사람이 미신에 혹한다. 무지한 데에는 권력도 소용없고 돈도 소용없다. 평생 특수부 검사로 위세를 떨치고 부인과 장모와 부친이 쌓은 돈더미에 올라 앉아있어도, 인문학을 무시하며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술만 퍼먹었었으니 세상사 논하는 자리에서 ‘어버버’ 하며 말빨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그런 함량미달의 사람이 악착같이 대통령까지 돼 보려고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공격하고 조국 장관 가족에게 멸문지화를 가하고 추미애 장관에게 모욕을 가한 만행을 떠올리니 치가 떨릴 만큼 화가 났다.
화가 나는 한편, 지혜와 지식은 모자라되 배짱과 용기는 충만한 줄 알았던 사람이 실제로는 돼지가 도살장 끌려오는 심정으로 토론장에 왔을 것을 생각하니 짠한 마음도 생겼다.
동시에 다행이라는 안도의 심정도 있다. 대한민국은 쿠데타로 인해 박정희도 겪고 전두환도 겪었지만 87년 이래 형식적으로나마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게 됐다. 출마자들이 TV토론을 통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론을 벌이는 것도 직접선거의 큰 은총이다.
현직에 있을 때 수구언론의 엄호 속에 검찰쿠데타를 획책하며 기세등등했던 자의 밑천이 이제라도 저렇게 가장 코믹한 모습으로 드러났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면서도 여전히 일말의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홍준표 씨가 치고 올라온다고는 하지만 국민의힘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윤 씨가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무대포 국힘당 지지자들이 ‘王석열 소동’에 꿈쩍이나 할까?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들도 국힘당 홍 씨보다 윤 씨를 본선에서 더 민만한 상대로 여긴다고 한다. 나는 반대다. 이런 위험하고도 천박한 사람에게는 1%의 가능성도 두어서는 안 된다.
불장난 하다가 집을 홀랑 태워먹은 케이스가 한두 번인가. 최소한 오늘만은 미신을 배척하는 1천만 기독교도들이 이런 내 생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