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작가는 근래들어 작업실 주변의 야생화와 들풀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일들이 많아졌다. 언제부턴가 그것들을 향해 ‘너는 뭐지’라고 통성명을 하듯 말을 건넨다. 그리고 나면 다시 스스로에게도 ‘너도 그러면 뭐냐’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존재의 탐구, 내면의 분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웅숭깊은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중진작가 김근중의 이야기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경험과 사유에 근거해 부분적인 세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개개인에게 관찰되고 체험된 각각의 세계가 전체로서의 ‘세계’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현대 회화가 각각 파편화 된 요소들을 드러내면서 ‘세계’의 진정한 얼굴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전통 회화=재현, 현대 회화=표현’ 식의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재가 아닌 상상, 객관이 아닌 주관에 관여하는 듯이 보이는 현대 회화 역시 어디까지나 (외부)세계의 단면을 드러낼 뿐이다. 현대 회화는 재현을 파기했다기보다는 ‘세계’의 다른 얼굴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회화와의 만남은 세계의 발견이고 ‘세계’와의 새로운 만남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현대 존재론을 떠올리게 된다.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론에 의하면 존재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며 또한 우주는 비분리되어있기에 전일적인 하나(Holistic One)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주는 끊임없이 생성을 도모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실체는 존재할 수가 없으며 나아가 우주의 모든 구성요소는 서로 원인으로 또는 조건으로 생성에 참여하기 때문에 서로 불가분하게 내재적으로 연결되어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양자역학은 실재는 단일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서구 실체론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나의 작업은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의 존재들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다. 있다가 사라지는 존재들, 그리고 그들의 생성과 소멸 과정사이에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을 이야기한다. 인간역시이래 일어나는 크고작은 일들이란 그 시점에서는 큰 일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의 흔적으로 남을 뿐이다. 도대체 그 사건, 사고란 무엇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것일까? 또한 그것을 야기하는 인간존재도 역시 소멸되고 기억의 편린들로만 남는다. 종내에는 삼라만상 세상만사를 인지하는 나란 존재도 소멸된다.”
그는 과연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질문을 던져본다.
“이 세계는 내가 존재하기에 존재한다. 이 세계 이 우주는 나와 생성의 동일체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근원적인 사유들을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다. 하나는 돌가루와 접착제, 물, 검정안료를 섞어 콜타르를 만들어 캔버스에 대여섯차례바르면서 요철과 텍스추어를 만든다. 이것은 존재들의 모습이기도하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일들의 집적이기도하다. 이렇게 캔버스바탕을 견고하게 만든후 다양한 색상의 안료를 접착제와 혼합하여 수없이 바른다. 이것은 현실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존재와 사건들의 다채로운 모습이며 흔적이다. 안료 착색후 형광색이나 여러가지 펄을 사용하여 디지털 시대의 칼라를 구현한다. 이후 물을 뿌리며 수세미로 문질르게 되면 요철부분에 다양한 색상의 속살들이 드러난다.역사를 관통하며 축적된 존재의 흔적들 같다.
또 하나는 석고붕대를 캔버스에 붙힌다음 검정색 돌가루를 발라 표면을 단일한 검정색으로 만든다음 다양한 안료를 십수겹바르고 그위에 다양한 펄을발라 말린후 물을 뿌리고 수세미로 문질러 부분적으로 벗겨낸다. 마치 역사적 흔적의 퇴적을 보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나의 작품은 인간을 포함한 존재들이 장구한 역사를 관통하는 제스츄어라고 할 수 있다. 사라진 모습을 통해 존재의 진면목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의 이런 작품들이 12일부터 12월 25일까지 용인 수지 갤러리위 ‘김근중 초대전’에서 공개된다. 기존의 작품세계를 넘어 단색추상의 정수를 보여주는 최근작들과 그동안의 모색이 담긴 드로잉을 함께 만나 볼 수 있는 전시다.
김근중 작가는 80년대 수묵풍경, 90년대 전통벽화의 재해석과 미니멀적 시도, 2000년대 모란의 현대화와 거기서 이어지는 꽃의 추상, 현재의 단색추상까지 존재를 화두로 작업해 오고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대만문화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한 김근중 작가는 90년 금호미술관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제갤러리, 겐지다끼갤러리, 김세중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공간에서 전시해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우양미술관, 호암미술관, 금호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가천대 길병원, SK본사, 삼성빌딩, 신한투자증권 본사, 한국방송공사, 목동남부지방법원, 송도 센트로드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