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순위를 기입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등수를 기입하지만 엄밀하게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근의 교육정책 설명회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1940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오늘날 교육부) 입시제도 설명회에 참석한 교사가 던진 질문이다. 당시 입시제도는 상급학교에 진학 할 때 일본어와 수학 성적만 반영하고 나머지는 품행 등을 반영해 교사가 순위를 매겨서 추천하도록 돼 있었다. 전쟁 상태로 서슬 퍼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인성을 줄세우기 해야 하는 교사의 고민이 묻어 있는 질문이다.
지난해 말 통과된 인성교육진흥법에서는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을 인성의 예로 들고 있다. 대학입시에 중요한 비중으로 반영되는 학교생활기록부에는 학생들의 교과성적 외에도 ‘인성발달 사항’을 담임교사가 주관적으로 기록하도록 돼 있다. 한국 교육계에만 있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교육계에서는 인성교육진흥법 등이 통과된 것은 “학생부 등을 통해 ‘인성을 평가해도 된다’는 인식이 넓게 형성되어 있고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학생의 인성을 주관적으로 평가해 입시에 반영한 제도는 1920년대부터 시작됐다. 일제가 중학교 입시 방식을 공개 선발에서 학교장 추첨제로 바꾸면서다. 중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식민지 조선인들은 급속하게 늘어났지만, 일제는 더 많은 학교를 설립하는 대신 입학문을 좁혀 조선인들의 교육열을 꺾고자 했다. 이 제도는 학생들의 반일사상을 통제하는 용도로도 활용됐다.
1926년 6·10만세운동 이후 학생들의 동맹휴업·반일시위 등이 늘어나자 각급 학교에 학생들의 ‘사상단속’ 지침이 내려졌다. 1928년 조선총독부는 “학교 동맹 휴업은 불온한 생각을 갖고 있는 일부 학생들 때문인데, 입학전형 과정에서 지원 학생들의 성행 등을 충분히 고려해 지조가 견실한 학생을 입학시켜야 한다”고 각급 중학교 교장들에게 하달했다. 반일 성향을 적극 드러내면 학교장 추천에서 배제해 입시에 불리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학교생활을 기록하는 공식 문서인 학적부는 이름, 나이, 주소, 부모 등 기본적 인적사항만 적는 문서에 불과했다.
1938년 조선총독부령을 개정하면서 학적부에 ‘성행’과 ‘가정환경’을 기록하도록 했다. 또한 학적부에 적힌 성행 등을 입시에 반영하도록 했기 때문에 반드시 서열을 매겨야 했다.
교사가 학생의 인성을 평가해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관행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손승준 한국교원대 교수는 “성행(인성)평가를 강화하는 입시제도는 한국인(조선인)들의 교육열을 냉각시키기 위해 시작한 제도”라면서 “나중에는 학생들의 사상통제를 위한 도구로 악용됐다”고 밝혔다.
인성교육은 1972년 이후 다시 부각됐다. 유신선포, 새마을운동 등과 더불어 사회 각계에 정신무장이 강조되던 시점이다.
박정희 정권은 1971년부터 학교장 권력을 강화하고, 대학 시간강사 등 비정규 교원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드는 등 교육계를 적극 통제하는 정책을 썼다. 1976년 유기춘 문교부(오늘날 교육부) 장관은 ‘유신교육 심화를 위한 정신교육 체계화’를 위해 ‘인성교육’을 거론했다. 유 장관은 인성교육 목적을 아예 “민족주체성 함양, 국가안보의식 고취, 새마을정신 고양 등을 통해 국가관을 명확히 하고, 국민교육헌장 이념을 구현한다”로 못 박았다.
유 장관은 또 “인성교육을 통해 교육입국을 위한 국민총화체제를 이룩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제1조에서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힌 것과 유사하다. ‘명랑사회’를 내건 전두환 정권 역시 ‘전인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인성교육을 강조했다. 신동하 경기교육연구소 연구실장은 “군사정권이 국가주의나 가부장주의를 강화할 때마다 인성교육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고 말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인성교육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됐다. 부정부패, 흉악범죄 등이 발생할 때마다 ‘물질만능주의’와 ‘인성’에 원인을 돌리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민주화 이후 사회갈등 원인도 ‘인성의 타락’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았다. 1992년 인성교육 강화의 일환으로 예절교육이 ‘제6차 유치원 국민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됐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인성교육 지표로 제시됐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학교생활기록부 제도가 정비되면서 학생들의 인성을 파악하고 기록하는 일은 교사의 공식 업무가 됐다.
교육과정에서 인성을 평가하는 관행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고 있다. 인성을 평가하려면 기준을 만들어야 하고 기준에 맞는 ‘특정한 인성’만이 ‘좋은 인성’으로 인정된다. 또 인성을 평가하기 위해 누군가를 관찰하고 감시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다.
인성교육이 궁극적으로 ‘말 잘 듣는 사람’을 길러내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이유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민간인 사찰이나 대기업의 직원·가맹사업자 사찰 등은 누군가를 감시하고 기록하는 것이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인권침해 시비도 만만치 않다. 2012년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교육부가 학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기록하도록 했다가 인권침해 논란을 빚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낙인효과’ 등을 이유로 기재를 반대했지만 교육부는 강행했다. 학생부에 학업중단 사실을 기재하는 것 역시 인권위가 제동을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사회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을 가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참교육 이야기> 저자 김용택씨는 “인성교육은 기존 교육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지 별도로 할 이유가 없다”며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과도한 경쟁교육·입시제도 등의 구조문제를 은폐한다”고 말했다. 인성교육진흥법을 대표발의했던 정의화 국회의장은 세월호 1주년인 지난 4월16일 인성교육진흥재단법을 발의하면서 “세월호 사건은 인성 문제”라고 다시 거론했다. 세월호 참사를 관피아와 선원 개개인의 ‘도덕적 부실’ 문제로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손승준 교수의 논문 ‘내신제 도입의 사회적 성격에 관한 연구’를 보면 1940년대 교육계도 “개개인의 학교생활 전반이 평가 대상이 되면 학생들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교육을 황폐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인성교육을 통한 통제는 주로 ‘입시’를 매개로 이뤄졌다. 인성교육진흥법이 통과되면서 각급 학교는 인성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교육청과 교육부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신동하 연구실장은 “지금 시행되는 인성교육은 사실상 복종교육”이라며 “인성교육이란 말 대신 시민적 권리와 책임감 등을 의미하는 ‘시민성 교육’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