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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 터전 잃은 '스물한 살'..
문화

단국대 ... 터전 잃은 '스물한 살'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5/05/16 21:43
12일 찾아간 충남 천안시 단국대학교 캠퍼스는 축제 첫날을 맞이해 화기애애했다. 길목마다 학과별로 마련된 부스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고, 놀이기구가 설치된 대운동장에는 웃음 띤 학생들이 쉴 틈 없이 드나들었다.

각 부스마다 들어가 '생명의료정보학과'를 아느냐고 묻자,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모른다'였다. 안다던 몇몇 학생도 단지 '한 번 들어봤다'는 수준에 불과했다. 넓은 교내 게시판을 채우고 있는 것은 대자보가 아닌 각종 홍보물뿐이었다. 교내신문을 이 잡듯 뒤져봐도 '생명의료정보학과 통폐합'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바이오기술(BT) 특성화를 위해 2014년 신설된 천안캠퍼스 생명의료정보학과는 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번 학년도를 끝으로 학과 모집을 중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결정된 사항이었지만 학과 측에는 신입생 선발까지 마친 3월 초에야 통보됐다. 이미 입학한 1, 2학년생 54명도 지난 3월 중순에 학교 측의 이 같은 결정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수강신청을 마친 지 고작 3주밖에 되지 않은 시기였다.

타 학과로의 전과든, 휴학이든 앞으로의 거취를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은 단 3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전과를 선택해야만 했다. 입학 1년 만에 제각기 흩어져버린 생명의료정보학과 2학년생 8명을 12일 저녁 교정에서 만났다.

2014년에 학과 신설, 2015년에 모집 중지 

모인 자리에서 학생들은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허탈함을 표하기도 했다. 모집 중지 통보를 받은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생명의료정보학과 학회장이었던 주호진(21)씨는 "그저 갑자기 열린 설명회에서 '학교 정책상 이렇게 된다'고만 들었다"고 말했다.

뜻밖의 통보에 학생들이 반발하며 '왜 하필 우리 학과인지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납득이 갈 만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비록 여러 학과를 하나로 합쳐버리는 통·폐합이 아니라 소속변경 및 전과가 허용되는 '모집 중지'였지만, 학생들에게는 사실상 '일방적인 폐과 조치'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학생들과 만나기 전, 보건과학대학 교학행정팀에서 미리 만난 학교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을 견지해야 하는 입장에서, 교원의 인력수급 문제 및 국내에서 이 학문을 적용해 취업할 수 있는지 등을 비롯해 학과의 경쟁력 및 존속능력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입학한 학생들을 끝까지 졸업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모집 중지가 결정된 이상 학생들의 피해 최소화에 초점을 맞춰 본인이 희망하는 진로로 소속변경과 전과를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번 학기까지는 전과하지 않고 기존 학과에 남는 것을 선택한 A(21)씨는 "졸업한 것도 아니고, 이제 1년 됐는데 존속 능력이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결정할 수 있느냐"며 "정상적으로 졸업해서 좋은 곳에 취업할 수도 있는 건데, 단지 '그럴 것 같으니까' 통폐합하자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최소한 1기라도 졸업은 시켜보고 결정했으면 조금이나마 납득이라도 했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A씨는 재학생이 있으면 학과는 유지된다는 학칙에 따라 기존의 생명의료정보학과 전공과목 일부를 수강하고 있다. 1·2학년생 대부분이 타 학과로 전과해, 남은 수강생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심지어 수강생이 단 한 명뿐인 강의도 있다. 수업은 이전처럼 이루어지지만 넓은 강의실에서 수업하기가 애매해, 아예 교수 연구실에서 '1:1 과외' 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어떻게 1년 만에 학과를 평가하고 존폐를 결정합니까"

타 학과로 전과를 선택한 학생들도 사정이 좋지 않았다. 자리에 모인 8명 중 A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산업공학과와 보건행정학과, 신소재공학과 등으로 전과한 상태다. 1·2학년 54명 중 몇몇은 중국어과나 사회복지학과, 심리학과 등 기존 전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으로 전과하기도 했다.

산업공학과로 간 B(21)씨는 "그나마 보건과학대학 내에서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물리치료학이나 간호학, 임상병리학 등은 전과를 허용해주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학교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모든 학과로 전과가 가능하도록 했지만, 의학·치의학·한의학 및 보건과학대학 일부 전공 등은 별도의 자격이나 허가를 필요로 해 전과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아예 '새로운 계열과 전공'을 택해야만 했던 셈이다.

학생들은 "새로 옮긴 학과에서 성적이든, 학교생활이든 제대로 적응한 친구는 단언컨대 전혀 없는 수준이다"고 입을 모았다. 보건행정학과로 전과한 박민우(21)씨는 "생명의료정보학과는 이공계지만 보건행정학과는 인문계라 학과 내용이 아예 다르다보니, 2학년인데도 전공필수 과목을 듣지 못하고 그쪽 1학년과 함께 기초 교양 과목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전과한 이후'에 대한 대책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초 수업을 듣지 않으면 전공 내용을 따라가기조차 벅차고, 아예 졸업요건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강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수업에는 이들의 상황을 고려한 현실적인 평가기준 마련 등의 배려조차 없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신소재공학과를 선택한 C(21)씨는 "한 수업에서는 일정 점수가 넘으면 절대평가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 기준은 전공을 새로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일부 학과로 전과한 1학년생들은 대부분 F 학점을 받은 것으로 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민우씨는 "어쩌면 추가 학기까지 1년 더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남학생의 경우에는 군대에서 보낼 2년까지 고려하면 가뜩이나 빠듯한 상황인데, 지난해 생명의료정보학과에서 공부한 1년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자조했다.

마치 학원 다니는 기분... "이러려고 대학 온 게 아닌데"

생명의료정보학과 학생들에게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산업공학과로 옮긴 D(21)씨는 "보통 2학년쯤 되면 대부분 친해진 사람들끼리만 몰려다니지 않느냐"며 타 학과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학회장 호진씨가 한마디 덧붙였다.

"조별 과제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벌써 다 친한 사이니까, 저희는 의견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고 눈치 보기에만 바쁘죠."

자리에 모인 8명 중 부스 행사를 비롯한 축제에 참여했다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말 그대로 '낄 곳이 없어서'였다. 심지어 학과 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도 못한 학생까지 있었다. D씨는 "타 학과로 그나마 많이 전과해봤자 대여섯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학과에서는 한두 명밖에 안 되니 그쪽에서도 충분히 생각해주고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저 학원처럼, 학교에 가면 가만히 앉아 수업만 듣다가 도로 하교하는 것이 이들 일과의 전부였다. 식사도 한때 생명의료정보학과였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먹거나, 그마저도 시간표가 맞지 않으면 혼자서 먹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 학생은 생명의료정보학과와 전과한 학과 사이 어딘가에서 '양다리 걸친 기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만남에서 대학 측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진행하는 대학구조개혁과는 무관하게, 대학 자체적으로 모집을 중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며 수요 예측 실패를 비롯한 대학 측의 잘못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대신 학생들의 성에 안 찰지언정, 모집 중지 결정 직후부터 학생 54명 전원에 대해 1:1 진로상담을 여러 차례 반복하며 피해를 줄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시간표를 파악해, 옮겨가는 각 학과의 학과장 및 교수들에게도 일일이 편지를 보내거나 개별연락을 취해 '잘 챙겨달라'고 얘기해둔 상태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막상 피부에 와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보건행정학과로 간 E(21)씨는 "학교 측에서는 어떻게든 불이익을 안 주겠다고 했지만 수업을 하고 성적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담당 교수들인데, 아예 우리 중 몇 명이 이 과로 옮겨왔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교수들도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너희들 새로 왔구나. 그래, 알았다"는 교수의 한마디만 듣고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모집 중지 결정 당시, 촉박했던 만큼 시간을 쪼개 주말까지도 진행했다는 진로상담도 마찬가지였다. 민우씨는 "이미 하고 싶은 공부를 못 하게 된 상황에 상담이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대화할 수 있는 자리라도 만들어줬으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지금의 조치가 철회돼 다시금 학과가 살아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학생은 8명 중 아무도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를 묻는 질문에도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옮긴 학과 진도 따라잡기밖에 없다', '너무 갑작스러워 아무 생각도 안 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답만이 돌아왔다.

얼마 전에야 뒤늦게 총학생회 측에 사안의 심각성을 알렸다는 학회장 호진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학생들은 "이제 아무런 대화도 없고, 관심도 주지 않으려는 학교 측에서 최소한 허심탄회하게 입장을 교환하며 납득할 만한 대안을 만들어나갈 자리라도 먼저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 측의 설명과 해명만 잠자코 듣는 자리가 아니라, 처우 개선이든 보상이든 실질적인 대책을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앞서 "학생들 속마음까지는 다 알 수 없지만 전과 이후 중간고사도 치르고, 서서히 각 학과에 적응해가면서 안정된 상태로 알고 있다"고 말한 학교 측 관계자는 인터뷰 분위기를 전해 듣고는 "대화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추진해보겠다"고 답했다. 기존 학과와 옮겨간 과의 등록금 차이가 최대 100만 원 이상까지 벌어져 학생들이 불만을 갖는 문제에 대해서도, 학교위원회를 비롯한 행정 절차를 거쳐 논의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의 계획에 따르면 6월부터 7월 사이 다시 한 번 학과를 변경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쳐, 새 학기가 되는 9월 1일부터는 소속변경 및 전과 절차가 행정적으로도 마무리된다. '전부 떠나도 끝까지 남겠다'고 버티지 않는 이상, 생명의료정보학과는 이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3일 만에 자기 진로를 다시 정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없어질 줄 알았으면 누가 왔겠어요, OT(오리엔테이션) 때는 열띠게 홍보하시더니…."
"옮긴 학과도 생명의료정보학과랑 같이 신설됐는데, 여기도 없어지지 않을까 불안해요."

인터뷰를 마무리한 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자조 섞인 학생들의 이야기가 오갔다. "그냥 빨리 군대나 가야겠다"는 남학생들의 이야기도 이따금씩 귀에 들어와 박혔다. 이제 스물한 살, 화사한 계절처럼 캠퍼스를 활기로 가득 채워야 할 학생들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이미 늦은 저녁이었지만 아직 축제의 일부 행사는 끝나지 않았는지, 이따금씩 마이크 소리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8명의 생명의료정보학과 학생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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