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연합통신넷, 심종완기자] 세계 일주를 시작한 지 174일째인 4월 11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자바 섬 사이 해역에 들어섰을 때였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적도 부근으로 해적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곳이기도 했다.
깜빡 잠이 들었을까,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3마일(약 4.8km) 이내에 물체가 다가오고 있다는 레이더 경고였다. 잠에서 깬 김 선장은 황급히 갑판 위로 올라갔다. 눈에 보이는 건 없었다. 하지만 레이더 속 물체는 빠르게 다가왔다. 불안했다. 일반적으로 해적들은 어둠 속에서 몰래 다가와 서치라이트를 켜고 약탈할 배를 확인한다. 이어 갈고리를 던져 배 위에 올라타 장비와 식료품을 약탈하고 선원들을 납치하기도 한다. 김 선장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요트의 모든 불을 껐다. 갑자기 3척의 배에서 서치라이트가 켜졌다. 여러 개의 빛줄기가 바다 위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숨을 죽인 김 선장은 돛을 이리저리 돌리며 그들의 눈을 피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다행히 해적선들은 멀어져 갔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당진 왜목항에 발을 디딘 김승진 선장이 가족들과 껴 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희망항해추진위원회 관계자들과 안희정 충남지사, 유기준 해수부 장관, 김홍장 당진시장은 2000여명의 국민들과 함께 이날 오후 3시 입항하는 김 선장을 현장에서 맞이하고 격려했다.
무동력·무기항·무원조 요트세계일주 기록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적도 2번 통과와 모든 경도와 위도 통과, 4만㎞ 이상의 항해거리 등의 요건을 갖춰야만 한다.
김 선장과 아라파니호는 지난해 11월27일과 지난 4월13일 각각 1번씩 적도를 통과하고 모든 경도와 위도를 통과했다. 항해거리는 4만1900㎞다.
김 선장은 왜목항을 떠나 서에서 동으로 달려태평양, 남극해, 대서양, 인도양을 거쳐 세계를 일주했다.
어느 지역 항구에도 상륙하지 않았으며 물리적 도움이나 인적 도움 등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김 선장의 요트는 폭 3.9m 길이 13m, 수면으로부터 높이 17m짜리의 9t급 동력선이지만 엔진을 봉인했다. 단독(Solo), 무기항(Nonstop),무원조(Unassisted), 무동력(Power restriction)이었다. 오로지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나아갔다.
세계일주 과정에서 김 선장은 출발초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한달 가량 계속해서 기둥이 부러지는 등 요트에 이상이 생겼다. 정비를 계속하면서 항해한지 두달만에 겨우 배가 안정을 되찾았다.
남미대륙과 남극사이에 위치해 바다의 에베레스트라 불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험준한 바다로 알려진 케이프 혼을 통과하던 지난 2월에는 5일 내내 최대풍속 50노트의 돌풍과 파고 7미터의 높은 파도와 싸워야 했다. 영국령 포틀랜드 제도에 위치한 사우스조지아섬 인근을 지날 때는 남극에서 떠내려 온 유빙을 피하느라 혼을 빼기도 했다. 남극해 구간에서 수면으로 조금밖에 떠오르지 않은 높이가 낮은 유빙이 요트 곁을 스치듯 지나갈 때는 간담히 서늘해졌다.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유빙과 부딛히는 순간 요트는 전복되거나 산산조각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김 선장은 유빙을 피해가기 위해 남극해를 통과하며 밤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배가 옆으로 기울어져 쓰러질 정도의 큰 너울성 파도와 태풍에 휩쓸려 수차례 요트 지붕위 환기구릍 통해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많았다.바람이 불지 않는 무풍지대를 만나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요트인들의 적, 해적이 들끓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자바섬 사이의 순다해협을 막 통과하던 날 밤에는 신원불상의 선박이 따라붙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김 선장은 이번 항해에서 '바다의 에베레스트'라 불리는 남아메리카대륙 최남단 '케이프혼'을 무사히 통과해 대한민국 최초의 '케이프호너'가 됐다.
건조식품 위주로 준비한 식량 가운데 가장 즐겨 먹은 음식은 '김치찌개'였다. 동남아 지역으로 들어 와서는 식량이 부족할 것을 염려해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김 선장은 항해기간 피로가 누적돼 힘들기도 했지만 특별히 아픈 곳 없이 아주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김 선장의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일본, 인도,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 횡단에 성공한 국가가 됐다
이런 식의 요트 세계 횡단은 1969년 영국인 로빈 존스턴이 312일 만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일본 호리에 켄이치가 1974년과 2005년 두 차례 성공했다. 2010년에는 호주의 제시카 왓슨이 당시 16세의 나이로 횡단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13년에는 중국인 구오추안이 48세의 나이로 횡단에 성공, 국가적 영웅이 됐다. 인도의 압히라쉬토미씨는 귀환하자 대통령의 환영까지 받았다.
2000여명의 국민들이 왜목항에 모여 환영한 가운데 김승진 선장이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줬다.충북 청주 출신인 김 선장은 현재 탐험가 겸 프리랜서 PD이자 요트 항해가로 활동 중이다. 세계 곳곳을 모험하며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일본 후지TV 등을 통해 방송하고 있다.
이번 항해 전 과정도 본인 스스로 모두 촬영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항해, 탐사 경력은 화려하다. 2010∼2011년 크로아티아를 출발, 단독항해로 2만㎞를 항해해 우리나라에 도착했다. 지난해에는 대서양 카리브해를 출발해 태평양을 건너 2만6000㎞를 항해했다. 1990년에는 5800㎞에 달하는 중국 양쯔강을 탐사, 다큐물도 만들었다. 나일강, 아마존강, 미시시피 강 등 세계 4대강을 탐험하는 것이 그의 목표 중 하나다.
학창 시절 유난히 물을 좋아했다. 그는 24살이던 1986년 한강 350km를 수영으로 종단하고 같은 해 일본 시나노강 380km를 수영으로 종단했다. 1990년에는 히말라야 탕굴라봉을 등정하는 등 수륙을 넘나드는 모험과 도전을 계속해 왔다.
김 선장은 "험난한 파도와 무풍지역 등 모든 순간순간이 힘들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포기와 절망감을 느꼈을 때"라면서 "힘든 항해를 성공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성원해준 국민들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도전하는 용기와 바다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데 더 큰 목표가 있다"는 김 선장은 앞으로도 이런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