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깊은 산중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헛된 생각들이 절로 사라진다. 한마디로 멍때림이다. 무한대의 우주공간에 마음을 풀어 놓으니 자연스레 명상에 빠져들게 된다.”
내설악에서 작업하고 있는 박종용 화백의 이야기다. 그는 밤하늘의 공간속에서 우주와 생명의 율동(결)을 잡아내 화폭에 쏟아내고 있다. 그림공부도 화가였던 부친과 형의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다.
“그림을 배우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주신 생명의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다.“
그가 쓰는 물감도 힌 색은 고령토를 사용하는 등 모두가 흙에서 온 것들이다. 그것들 조차도 대지의 생명들로 여긴다. 대지로 생명의 율동을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한 인연이 컬렉터이자 후원자였던 정상림을 만난 것이다. 당시 젊은 검사였지만 가난한 화가였던 그의 작품을 사주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런 인연은 세종문화회관(사장 안호상)에서 마련하는 ‘세종컬렉터 스토리’전시로 이어졌다. 미술계에서 컬렉터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작가 후원의 사회적 가치 공감을 확대하기 위한 취지로 기획된 전시다. 바로 ‘어느 컬렉터와 화가의 그림이야기(컬렉터 정상림-화가 박종용)’ 전 이다. 지난 9일 개막해 28일까지 전시가 열린다.
정상림(1940~2019)은 법조인이자 전문컬렉터로서 50년 동안 수많은 각종 미술품을 수집하고 작가들을 후원했고, 2011년엔 내설악백공미술관을 설립했다.
이번 ‘세종컬렉터 스토리’ 전시는 특별히 컬렉터의 컬렉션 뿐만 아니라 컬렉터가 후원한 예술적 동반자였던 박종용 화백 작품과 그들의 따뜻한 이야기도 함께 소개된다.
컬렉터 정상림은 풍부한 예술적 식견과 자신만의 심미안으로 오랫동안 많은 그림을 수집하고 작가를 후원해왔다. 그 중 화가 박종용 화백은 후원 작가이자 평생 예술적 동반자였다.
1970년대 후반 작가와 컬렉터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0년 넘게 예술적 동행을 하면서 2006년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 미술관 건립을 계획하고 2011년 8월 백공미술관을 개관했다.
정상림은 꾸준히 우수한 한국 근·현대미술을 수집해왔고, 이들 작품을 바탕으로 수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박 화백은 백공미술관 관장으로, 작가로 화업을 이어갔다. 작업도 미술관에 딸린 작업실에서 하고 있다. 현재 백공미술관 회장은 정상림의 아내 방영자씨가 맡고 있다.
이번 ‘세종 컬렉터 스토리’ 전시는 크게 ‘정상림컬렉션’과 박종용 화백 작품전으로 나뉜다. ‘정상림컬렉션’ 전시는 △인물을 그리다 △자연을 담다 △새로움을 시도하다 △다양함을 확장하다란 4개의 섹션으로 구분해 한국 근·현대미술 대표작들을 선보인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를 비롯해 한국 모던아트의 정착과 확산에 기여한 권옥연·김흥수·남관·최영림, 1970년대 모노크롬 열풍을 주도한 윤형근, 파격적으로 현대 동양화를 실험한 이응로·하인두, 국제적 조류에 걸맞는 미술을 추구하며 개성 있는 조형 세계를 구축해 나간 이우환·신성희·강익중 등의 작품 외에 각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김두환, 김영덕, 김원, 김훈, 류경채, 문서진, 박상옥, 박영선, 박영하, 변종하, 오지호, 오치균, 윤중식, 이두식, 이득찬, 이림, 이배, 이수억, 이숙자, 임직순, 장이석, 전혁림, 천칠봉, 최병소, 최예태, 표승현 등 근·현대 대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이자 주목되는 것은 정상림 컬렉터가 후원한 박종영 화백의 특별전이다.
박 화백의 추상회화는 흙을 곱게 걸러내 아교와 섞어 캔버스나 마대 위에 점을 찍어 화면을 채워나가는 방식이다. ‘점’으로 시작되서 우주의 환원처럼 ‘점’으로 마무리된다. 200호 대작 ‘결’ 시리즈 10점 등 다양한 ‘결’ 작품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한국 모던아트의 정착과 확산에 공헌한 대표 작가들과 한국현대미술을 개척하고 확장시킨 작가들의 수작들을 감상함과 동시에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울러 평생 예술을 사랑한 미술 애호가 정상림 컬렉터와 그의 평생 예술적 동지인 박종용 화백의 예술에 대한 안목과 예술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