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박형수 기자=향후 5년간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게 될 제20대 대통령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2022년 3월9일 치러지는 대선(大選)을 앞두고 대권을 노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진검승부도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현재 판세로는 40% 이상의 지지율로 대세론을 질주하는 절대강자가 없는 대혼전 구도이다. 정권교체론이 우세하지만 최종 판세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 이내의 접전 양상이다. 지난 11월5일 국민의힘 경선 이후에는 컨벤션 효과를 누린 윤 후보의 상승세가 뚜렷했다. 이 후보가 민주당 경선 이후 역(逆)컨벤션 효과에 시달린 것과 정반대였다. 다만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합류를 둘러싼 선거대책위원회 인선 난맥상 속에서 이 후보가 선대위 쇄신 및 사과 모드로 반격에 나서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최근 주요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1% 안팎의 초박빙 승부다.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대선판…李·尹 3무 후보‘, ’3비 후보‘ 난타전
이번 대선은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양상이다. 정책과 비전 경쟁은 사실상 실종된 지 오래다.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 윤 후보는 고발사주 의혹 등 역대 최악의 사법 리스크에 연루돼 있다. 경우에 따라선 후보교체론마저 불거질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여야(與野)는 연일 난타전이다. 이 후보 측은 윤 후보의 실언과 말실수 등을 예로 들며 ‘3무(무능·무지·무당) 후보’라고 맹비난했다. 윤 후보 측도 조카의 데이트폭력 살인사건을 변호한 이 후보의 과거 등을 문제 삼고 ‘3비(비겁·비속·비정) 후보’라고 반박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점도 변수다. 각종 조사에서 이 후보와 윤 후보의 비호감도는 60% 안팎이다. 이 때문에 부동층 표심(票心)이 차기 대선의 캐스팅 보트로 떠 오를 수밖에 없다. 여야 양강 주자가 20·30세대와 중도층 표심 확보를 위해 외연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밖에 역대 대선의 단골 메뉴였던 후보단일화도 막판 변수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새로운 물결’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지지율은 각각 5% 미만으로 미약하지만 경우에 따라 이재명 또는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있는 건 아니다. 아울러 세 후보간 제3지대 단일화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부동층 이례적으로 많아 …2030 포함 중도층도 주요 변수
11월29일 현재 대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으나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은 부동층은 이례적으로 많다. 앞으로 남은 기간 이(李)·윤(尹) 후보와 안철수· 심상정 후보, 김동연 전 부총리가 펼칠 레이스에선 막판까지 최종 승자를 가늠하기 어려운 안갯속 판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윤 후보 모두 각각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과 고발사주 의혹으로 검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선상에 오른 점도 대선 정국의 뇌관이다. 여야는 각각 상대 후보를 겨냥해 대장동·고발사주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수사 주체가 어디든 대선 전 결론이 날 가능성은 적지만 관련 정보가 흘러나올 때마다 정국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2030세대를 포함한 중도층 표심도 선거 결과를 좌우할 주요 변수다. 이 후보는 전날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다 숨지게 한 22세 청년의 변호인에게 이메일 편지를 보내 “질병이 가난으로, 가난이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살피겠다”며 이 이슈에 공감하는 청년 및 중도층에 손을 내밀었다. 윤 후보는 이날 청년조직을 띄우며 2030세대 외연 확장에 주력했다.
역대 대선에선 선거 100일 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던 후보가 당선됐지만, 이번엔 부동층 비율이 여론조사에 따라 20%대까지 나와 판세가 유동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현재 이·윤 후보 지지율은 오차범위 내 초접전 양상이다. 3∼5% 지지율을 기록 중인 제3지대 후보와 이들 간의 합종연횡 또는 여야 유력 주자와의 결합은 선거 막판에 승패를 뒤집을 대형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안철수·심상정 후보, 김 전 부총리는 현재 완주 의지를 표명한 상태다.
중도층이 등 돌리면 진영 정치는 더욱 기승 부릴 것…프랑스 선례 교훈 삼아야
대장동 개발특혜와 고발사주 의혹의 진실게임이 시작되면서 ‘공정과 정의의 복원’ 같은 대선의 시대정신은 실종됐다. 경제 회생 방안과 코로나19 이후(포스트 코로나) 새로운 외교안보 전략 마련 등 정책과 비전 경쟁으로 전환돼야 한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여야의 사생결단식 대결로 계속 치달아선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
한국과 비슷한 선례가 프랑스에서도 있었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를 40일가량 앞둔 2017년 3월 중순 유력 대선주자인 무소속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부 장관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경제부가 2016년 라스베이거스 가전박람회(CES) 행사를 특정 업체와 수의 계약한 의혹과 관련해 파리 검찰청이 당시 경제부 장관이던 마크롱에 대한 예비조사(내사)에 착수한 것이었다. 마크롱의 내사 소식이 전해진 날 공화당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용도 피의자 신분이 됐다. 의원 시절 자신의 아내와 두 자녀를 보좌관으로 허위 채용한 혐의였다. 지지율 1위를 달리던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폭력과 테러를 조장하는 사진을 유포한 혐의로 이미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지지율 1∼3위 후보가 모두 수사 대상이 되면서 “대선이 난장판이 됐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검찰 수사 결과가 대선판을 뒤흔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었다. 유권자들 사이에선 “대선후보인지 범죄자들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누구를 뽑아야 하나”라는 푸념이 쏟아졌다. 일부에선 투표를 포기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는 현실이 됐다. 마크롱과 르펜이 맞붙은 2017년 5월 대선 결선투표에서 프랑스 유권자의 11.5%가 무효표를 던졌다. 역대 최고치였다. 등록 유권자의 4분의 1 이상은 아예 투표소에 나가지 않고 기권했다. 1969년 이후 가장 높은 기권율이었다.
2022년 3·9 대선이 100여일 남았다. 묻지마식 진영 대결로는 대선이 끝나도 블행한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가장 염려되는 건 중도층이 냉소와 분노로 대선에 등을 돌리는 것이다. 정책과 비전 대결 중심의 선거는 끝내 실종되고 진영 정치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4년 전 프랑스의 대선 상황이 우리의 얘기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