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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뒤틀린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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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뒤틀린 ‘역지사지’

강기석(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기자 poweroftruth@daum.net 입력 2021/12/01 18:52 수정 2021.12.01 18:58

‘역지사지’란 내 입장만 고집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이 돼서 생각해 보라는 좋은 의미의 사자성어다. ‘공감’ ‘연민’ ‘양보’ ‘배려’ 등 뿐 아니라 ‘공정’이란 덕목도 바로 이 역지사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아마도 소시오패스에게 가장 부족한 것 역시 이 ‘역지사지’일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이른바 언론(이라 참칭하는 것)들은 ‘역지사지’를 완전히 다른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요즘 윤석열 후보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 마다 “이재명이 똑같은 상황의 주인공이었다면 어떻게 보도했을까”라는 의문 아닌 탄식이 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 있는 듯하다. 이재명에 대한 보도의 잣대와 윤석열에 대한 잣대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한 쪽은 비틀고 부풀려서 가혹하게 비난하고 가짜뉴스라도 만들어 악마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다른 쪽은 있는 것도 덮어주고 축소하고 비호하기에 바쁘다.

대한민국 언론(이라 참칭하는 것)이 구사하는 ‘역지사지’에 ‘공정’은 없다. 그 처참한 실태를 김종구 언론인(전 한겨레 편집인)이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같은 언론인임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실로 뼈가 아프다.

얼마 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TV조선>이 주최한 행사의 생방송 무대에서 1분30초 가량 ‘침묵 연설’을 한 사고가 있었다. 방송가에서 좀처럼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쳇말로 역대급 방송 사고다. 그런데 우리나라 유수 종합일간지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행사를 생중계한 TV조선은 해당 장면을 영상에서 삭제해 재편집해 올렸다. 네티즌들이 이미 녹화한 영상이 있었고, 몇몇 온라인 매체 등이 보도해 그나마 세상에 알려졌다.

만약 방송 사고의 당사자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거나, 방송 사고가 난 언론사가 다른 방송사, 예를 들어 <문화방송>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전자라면 ‘이재명 후보 역대급 방송 사고로 망신’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온 신문마다 넘쳐났을 것이다. 후자라면 ‘MBC 고의로 윤석열 후보 물먹였나’ 등의 ‘음모론’이 무성했을 게 분명하다. 해당 방송사 관계자들에 대해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 조성에도 언론이 앞장섰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상상에서 나온 근거 없는 추정이 아니다. 현재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 보도의 실상이다. 때로는 대상과 주체를 바꿔보면 진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지금의 언론 현실에 대한 진단이 그렇다. 비슷한 사안을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에 대입해 보거나, 현재의 두 대선 후보를 치환해보면 언론 보도의 극심한 편향성 문제가 곧바로 다가온다.

<조선일보>는 얼마 전 ‘이재명의 정신, 전문의들은 이렇게 본다’라는 기사를 올렸다. 정확히 말하면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자매 매체인 <헬스조선> 기사지만 결국은 조선일보 기사다. 이재명 후보의 ‘소시오패스’ 여부에 대한 정신과 전문의 두 명의 의견을 전한 기사였다. 기사를 읽어보면 형식과 내용 모두 ‘함량 미달’의 기사인데, 이런 기사를 실은 의도는 뻔하다. ‘이재명 후보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의 신기루’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정신 건강’을 따지기로 들면 윤석열 후보가 훨씬 더하다. 수많은 망언과 실언,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을 통해 ‘두뇌 건강’의 심각한 이상 징후가 드러났는데도 조선일보는 전문가 분석 기사를 싣지 않았다. 특정 후보만을 상대로 대낮에 마구잡이 칼을 휘두르는 ‘테러 기사’야말로 ‘소시오패스’ 성향의 증거다. 대선 후보의 정신 건강을 논하기에 앞서 언론과 기자의 ‘정신 감정’이 우선 필요한 이유다.

언론의 정파성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념적 지향에 따라 언론의 지지 후보가 다른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지금까지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편향과 왜곡 기사가 넘쳐난다. 보수언론들은 최소한의 균형 감각과 형평성, 객관성을 상실했고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도 깡그리 무시한다. 가히 역대급 불공정 대선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보수 언론들에게 윤석열 후보는 단순한 보수 정당의 후보가 아니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시절부터 보수언론이 공들여 키운 후보다. 그동안의 어떤 보수 대선 후보와도 차원이 다른 매우 특별한 후보다. 윤 후보는 보수언론들이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조국 사건 당시 언론의 보도는 무엇이었는가?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검증해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저널리즘적 소명 의식의 결과였는가? 아니다. 그것은 노골적인 혐오의 조장이었다. 그것은 언론 보도라기보다는 한바탕 격렬한 폭력과 선동의 아우성이었으며 한 시대 황폐의 징후였다. 어느 시점부터는 결과적으로 ‘윤석열의 야심’을 돕는 정치성 보도였다. 그러니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 위조 혐의에 대해 쏟아부은 취재 노력의 100분의 1도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이력서 허위작성 사건에는 기울이지 않는다. 정경심 교수의 사모펀드를 두고 쏟아져 나왔던 폭포수 보도에 비하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보도는 물방울 수준도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언론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다

지금 보수언론들은 ‘자식 대통령 만들기’에 골몰한 나머지 상식과 이성, 염치와 체면을 모두 내팽개친 부모와 같다. 시험지를 빼돌려서라도 자식의 성적을 올리겠다는 몰지각한 부모처럼 말이다. 이들에게 당면한 화두는 이재명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를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쓸 수 있을 것인가다. 이들의 절체절명의 고민거리는 윤석열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를 어떻게 하면 은근슬쩍 뭉개고 넘어갈 것인가다. 그래서 사안을 비틀고, 부풀리고, 뒤섞고, 물 타고, 덧칠하고, 헝클어 놓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청부 고발’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조선일보> 등 보수신문들은 이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후미진 곳에 마지못해 기사를 실었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의지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러다가 언론 보도 경위를 둘러싼 의혹 부풀리기에 나섰다. 검찰의 사조직화, 국기 문란 행위라는 본질은 사라졌다. 줄기는 내팽개치고 곁가지만 강조하는 ‘본말전도형 기사’, 사안을 헝클어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 기사’의 전형이었다. 청부 고발 사건에서 보수언론이 지향하는 언론의 사명은 진실 추구도, 국민의 알권리 충족도, 사실 보도도 아니다. 오직 ‘윤석열 보호’다.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의 중요한 한 축은 법조인-정치인-언론인들로 구성된 부패 카르텔 문제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만 대략 꼽아봐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나 박영수 전 특검, 권순일 전 대법관뿐 아니라 원유철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화천대유 고문), 김수남 전 검찰총장(화천대유 고문), 이경재 변호사(최순실씨 변호인, 화천대유 고문), 신영수 전 새누리당 의원 동생(대장동 개발 관련 뇌물 수수 유죄) 등 온통 국민의힘 계열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떤 커넥션을 갖고 '기득권 부동산개발 이익공동체'로 활동했는지가 사건의 중요한 핵심의 하나다. 언론으로서는 취재 의지가 불끈 솟아나는 메뉴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궁금증을 풀어주는 보도는 감감무소식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윤석열 후보가 대검 중수2과장 시절 주임 검사를 맡았던 부산저축은행의 대장동 부실 대출 수사 의혹쯤은 언론의 관심사도 아니다. 당시 수사 대상에서 비껴간 대출 알선자의 변호인은 박영수 전 특별검사 쪽이었고, 중간에서 박 전 특검을 소개한 이가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김만배-박영수-윤석열로 이어지는 삼각 고리를 둘러싼 의혹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데도 언론은 결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 시대의 최대 화두는 ‘공정’이다. 언론은 물론이고 윤석열 후보 역시 공정의 깃발을 흔들며 자신의 정치 참여 행위를 정당화했다. 그런데 지금 보수언론은 불공정 보도의 반칙을 일삼으며 대선판에서 ‘선수’로 맹렬히 뛰고 있다. 그 불공정 보도에 힘입어 윤석열 후보는 하루하루 곤경을 모면하고 있다. 과연 보수언론과 윤석열 후보는 공정을 입에 올릴 자격이라도 있는 걸까. 불공정의 나무에서 공정의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정치적 욕망으로 오염된 언어들이 언론의 가면을 쓰고 어지러이 난무하는 속에서 민주주의는 질식해간다. [김종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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