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기후위기와 코로나19 대유행은 인류에게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생태학적 세계관'이 시대정신으로 부각되는 이유다. 인간중심적 사고와 관점에서 벗어나 생태학적으로 ‘공생’, ‘연결’, ‘균형의 회복’을 성찰하는 전시 ‘대지의 시간’이 내년 2월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16명의 사진, 조각, 설치, 영상, 건축, 디자인 등 분야를 넘나드는 작품 35점이 출품된다. 김주리, 나현, 백정기, 서동주, 장민승, 정규동, 정소영의 신작과 더불어 올라퍼 엘리아슨, 장 뤽 밀렌, 주세페 페노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히로시 스기모토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출품작들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 자연과의 교감,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한 균형의 회복 등의 주제를 탐구하며 공진화(共進化, 여러 개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며 진화하는 것)를 위한 태도와 공감대 형성을 보여준다.
공생과 공진화를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할 생태학적 세계관에 다가가기 위해 전시장 구성부터 기존의 전시틀을 허물었다. 전시 종료 후 산업폐기물로 남는 가벽을 최소화하고 작품들이 서로 소통하며 연결되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전시는 자연에 대한 인간 중심적 시각과 학습에 대해 보여주는 정소영과 히로시 스기모토의 작업에서 시작한다. 유구한 지구의 역사와 시간의 흐름에서 인간의 시간이란 작은 구간에 불과함을 성찰하는 올라퍼 엘리아슨과 김주리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생사를 반복해 온 대지의 시간에 우리 자신을 위치시키게 된다.
주세페 페노네의 조각은 지구의 오랜 시간이 압축된 대리석의 표면에서 새로운 생명이 뻗어 나오는 형상을 통해 순환과 연결의 의미를 강조한다. 평생을 새와 생활해 온 장 뤽 밀렌은 그 교감의 시간을 새의 시점을 중심으로 기록했다.
나현의 대만 원주민에 대한 연구는 급작스러운 산업화와 문명의 발달로 단시간에 초래된 기후위기를 겪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을 경외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지켜내는 삶의 지혜를 전달해준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영혼의 종소리는 사람, 대지, 하늘,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요소들이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환기시킨다. 마지막으로 서로 의지하고 연결된 기둥의 구조를 구현한 정규동은 인과율이라는 건축적 개념을 통해 조화와 균형, 존중과 배려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생명체는 물론 존재하는 모든 것의 ‘공동의 집’인 지구의 장대한 역사 속에서 인간 스스로를 거대한 생태계의 일원으로 파악할 때 비로소 뚜렷해지는 생태학적 가치를 성찰하는 자리다.
한국의 생태미술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도 함께 열린다. 한국적 생태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업인 전국광 작가의 1975년 ‘수평선’ 작업을 재현한 퍼포먼스 사진과 현장 기록 영상, 한국 생태미술의 맹아인 임동식의 작품, 과천의 재개발 과정을 수집하고 기록했던 과천 기반 작가 정재철, 자연 속의 인간 존재를 탐구하며 회화의 경계를 확장하는 김보중,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따른 지구의 환경에 대해 적극 발언하고 행동하는 이경호의 작업 등이 다양한 생태미술 관련 단체 활동 자료와 함께 소개된다.
한국 생태미술은 197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모더니즘을 극복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