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추니박의 화폭에 펼쳐지는 것들은 느린 풍경이다. 시간이 구름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풍경이다, 여행,기억들이 촘촘히 쌓여진 풍경이기 때문이다. 후설은 자아를 시간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반성이야 말로 곧 시간성이라 했다. 추니박의 풍경이 그렇다.
“나는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것은 마치 영화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준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흐르는 시간을 보려 해도 우리는 쉽게 그것을 볼 수 없다. 다만 매일매일 같은 장소에 앉아 자연을 바라보는 자만이 그 놀라운 순간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봄과 가을의 숲에서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는 일을 몇 년째 지속 해오고 있다.
“봄의 숲에서 노란빛에 가까운 연두 빛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은 길어야 하루정도 이다. 숲으로 들어오는 빛이 연두색의 나무순을 어루만지면 나는 그림을 그리다 말고 그냥 멍하니 그 속에 빠져있었다. 그 빛과 색은 하루하루 다른 빛을 띠며 초록의 여름으로 흘러간다.”
그는 그런 순간들을 잡아내기 위해 오랜시간 숲에 집중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의 어느 순간에 초록의 나뭇잎이 노란색과 연두 빛으로 화려하게 수를 놓고 한 순간 주황빛을 뿜다 이내 갈색으로 죽어간다. 그 순간은 너무도 짧아서 시간의 덧없음에 슬픔마저 느끼게 된다.”
그에게 흘러가는 시간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은 색이다.
“자연의 변화는 색의 변화다. 나무와 바위가 자연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면 자연의 변화하는 색은 자연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운명을 자연의 사계절에 비유하는 것이 아닐까! 그 피의 흐름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세상은 삶과 죽음의 끝없는 윤회를 반복하며 생명으로 넘쳐나게 된다.”
최근 몇 년간 그는 많은 시간 숲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숲을 바라보고 숲을 걷고 숲을 즐기고 숲을 그렸다. 그런 경험을 통해 그에게 기억된 것은 물감에 없는 자연의 색이다.
“미묘한 색의 변화, 예를 들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연두색과 초록색, 노란색과 주황색, 붉은색과 갈색의 차이를 보면서 나는 어느 계절 어느 순간의 색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체득된 자연으로부터 얻은 색을 그의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그에게 여행이란 풍경에 지속적으로 집중하게 하는 수단이다.
“여행은 나에게 산소와 같은 것이다. 여행을 통해 나는 숨을 쉬고 내 자신을 치유한다. 또한 새로운 낯선 곳의 풍경만큼 익숙한 풍경이 선사하는 포근함, 그래서 나는 나의 정원으로도 여행을 간다.”
그에게 ‘여행, 기억 그리고 풍경’은 지금 ‘그의 여기’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묘사다.
사람이 죽는 순간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한다. 실제 시간보다 슬로우 비디오같이, 느리게 흐르는 것이다. 온갖 회한과 아쉬움 등이 순간처럼 지나감에도 왜 느리게 느끼는 것일까. 위험에 처한 순간에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에 따르면 어떤 상황에 낱낱이 집중하는 상황이 되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끼게 된다고 한다. 젊은 시절보다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점점 더 빠르게 흐르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다. 어렸을 때는 세상의 많은 것이 새롭고, 그 많은 것들에 호기심과 두려움 등 온갖 감정이 생긴다. 이처럼 세상의 여러 가지가 생생하게 인식되는 상황들이 시간을 느리게 흐르는 것으로 느끼게 해준다.
같은 맥락에서 추니박이 풍경을 어린아이처럼 집중해서 오래도록 바라보니 절로 느린 풍경이 탄생했다.
그에게 흘러가는 시간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은 색이다. 추니박에게 색은 자연이 선사한 것이다. 나무와 바위가 뼈대라면 그것에 피처럼 흐르는 것이 자연의 변화하는 색이다. 동양화의 필법(준법)으로 나무와 바위의 뼈대를 만들고 피처럼 흐르는 색을 입히는 것이 추니박의 그림이다. 내년 1월 3일까지 갤러리마리에서 열리는 추니박 특별초대전은 이를 향유해 볼 수 있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