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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지를 만나 처음 글을 썼고 그러자 삶이 바뀌었다"..
기획

"이 잡지를 만나 처음 글을 썼고 그러자 삶이 바뀌었다"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5/05/21 19:50

"핸드폰 안 쓴 지 1년 반이 됐고 신용카드도 반 년 전에 버렸다"고 그는 말했다.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방식을 좀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는데, 정말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그 덕에 요즘 그 안에서 아무도 책 보는 이 없는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책을 두 권이나 읽었다."


안건모(57) <작은책> 발행인. 지난 5월 1일로 창간 20돌을 맞은 문고본 크기(46판)의 이 작은 월간지 편집과 기획, 영업 등을 10년째 사실상 도맡아 온 그는 "20년을 버틴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지난 20년 동안 출판된 노동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라고 자부하는 이 잡지는 필자와 독자가 거의 모두 가정과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로지 한 가지 뜻으로 책을 펴왔습니다. 자본가들을 위해 왜곡까지 서슴지 않는 거대 수구언론에 대항하면서 올바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애쓰면서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작은책>의 홍보자료에 들어 있는 이 당찬 문구는 바로 핸드폰도 신용카드도 버린 안 발행인 자신의 각오를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는 것 같다.

보안사 출신 '꼴통보수' 버스운전 기사
1995년 '작은책' 현장노동자 글에 자극
20년 버스운전 애환 써내 유명해져
문학상도 받고 편집장 맡아 10년 봉사
"최근 해고당해 구독 끊는 노동자 많아"
'현대 민중사 자료' 사명으로 영업 앞장

"<작은책>이 나오기 전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본 적이 없다"고 한 안 발행인은 "나 자신이 바로 <작은책> 덕에 글도 쓰고 삶도 바꿔버린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서울 마포 출신인 그는 "보안사령부에 근무했던 꼴통보수"였다. 1980년에 제대한 뒤 건설현장과 전기공사장 잡부, 화물차와 자가용 운전사 등 "엄청 많은 일들"을 전전하다가 1985년에 버스 운전사가 됐다. 그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보리 펴냄)는 서울 광화문~경기 일산, 서울 우이동~신림동을 오가는 버스 들을 20년간 몰면서 겪었던 애환을 담고 있다. "(창간된 해인) 1995년 말께 <작은책> 처음 보고 놀랐다. 일하는 사람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구나. 버스 현장 사람들도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 운전을 하면서 우연히 빌려 본 <쿠바 혁명과 카스트로>라는 만화책에 깜짝 놀랐고, 계속 체 게바라와 리영희 등을 읽으면서 '꼴보수'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지만, "<작은책>을 만나기 전엔 한 번도 글을 써 본 적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버스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를 만들었고, <버스 일터>라는 소식지도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8년에 집 앞에서 기다리던 누군가가 내게 각목을 휘둘렀다. 머리까 깨져 50바늘이나 꿰맸다. 산에 갔다가 얻어맞은 적도 있다. 글을 쓰니까 겁들을 내는구나, 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구나,하는 걸 느꼈다. 링거를 맞아가며 계속 글을 썼다."

1997년 제7회 전태일문학상 생활문학 부문에 입선했다. 그때 심사위원이 이오덕 선생이었다. "이오덕의 직속제자"임을 자처하는 그는 그 뒤 <한겨레>에 연재도 했다. 2005년에는 <작은책> 창간을 주도했고 지금도 버팀대가 돼 주고 있는 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의 권유로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 잡지 편집장이 돼 상태를 호전시켰다.

64쪽으로 출발한 <작은책>(매호 3500원)은 지금 160여쪽으로 약간 도톰해졌으나, 실리는 글들은 대개 한 편이 200자 원고지 15매 가량(4쪽)으로 매월 25~30편의 글이 담긴다. "주요필자는 50명 정도 되지만, 누구나 글을 투고할 수 있다. 노동현장 사람들과 주부들이 많다." <작은책>을 읽고 속풀이로 짬짬이 글도 쓰면서 여러 다른 삶들을 만나 마음도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는 충청도 황간의 농부 전상순씨 글에는 노점상 족발 사장 김영철씨, 배 만드는 사람 안윤길씨, 박흥렬씨, 배 용접공 배순덕씨, 전씨를 "목젖이 아프도록 울게 만들었던" 자식잃은 할머니 등이 이 잡지 필자로 소개돼 있다.

닮은 잡지가 <삶이 보이는 창>인데, "그쪽은 문학 비중이 높다"는 점이 다르다고 안 발행인은 말했다.

투고한 글이 채택되면 원고료를 주는데, 돈이 아니라 이 잡지 정기구독권을 주거나 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가 운영하는 '변산공동체'에서 나는 유기농 쌀을 구입해서 준다. 안 발행인은 얼마전 편집장을 유이분씨에게 맡기고 다시 영업일선에 나섰다. 그만큼 사정이 좋지 않다는 얘기다. 한때 5천 명선에 다가가던 정기구독자가 지금은 좀 떨어졌다. 그는 "요즘 <작은책> 독자분들이 구독을 끊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직장에서 해고돼 더는 책을 볼 수 없다'는 것"이라며 안타까와했다.

<작은책> 살리기를 '역사적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는 보리의 윤구병 대표는 20돌 특집호에 이렇게 썼다.

"나는 <작은책>에 지난 20년 동안 실린 작은 이들의 이야기가 나중에 이 나라 남녘땅에 가장 값진 '민중사'의 기록으로 남으리라고 확신한다. 아마 뒷사람들은 이분들이 쓴 글을 서중석이나 한홍구 같은 이 시대 가장 뛰어난현대 역사학자들이 쓴 책보다 훨씬 더 소중한 1차 자료로 여기리라."

지난해 자신이 쓴 <삐딱한 글쓰기>라는 책을 낸데 이어 얼마전 <내 인생과 글쓰기>를 엮어낸 안 발행인은 그 자신 글쓰기의 달인이 됐다. "700권의 글쓰기 책을 읽었다"는 그는 말했다.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글쓰기는 이론으로 배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글쓰기는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글쓰기 강연에 가면 그는 먼저 글쓰기를 숙제로 내 준단다. "그렇게 해서 받은 숙제물을 쓴 사람이 직접 낭독하게 한 다음 참석자들이 합평을 한다. 그렇게 해야 글쓰기를 가장 빨리 익힐 수 있다. 사람들이 왜 글을 못 쓰나? 그건 남에게 자신의 글을 내놓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엔 무척 겁을 냈다. 하지만 자기 글을 내놓음으로써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안 발행인이 보기에 그것은 곧 세상이 바뀌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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