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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생멸법과 인과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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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생멸법과 인과응보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21/12/28 22:00 수정 2021.12.28 22:00

불가(佛家)에 <불생불멸(不生不滅)>과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생불멸은 태어남과 죽음, 만들어짐과 사라짐의 양극단을 부정한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의 법칙’에 의해, 인(因)과 연(緣)이 화합하면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 인연이 다하면 스스로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인과응보란 선(善)을 행하면 선(善)의 결과가, 악(惡)을 행하면 악(惡)의 결과가 반드시 뒤따름을 말합니다.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원인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 이것이 ‘인과율’ 또는 ‘인과의 법칙’이지요.

우주의 진리란 이런 것입니다. 그 우주의 진리를 잘 설파(說破)하신 분이 있습니다. 시인이고, ‘사)전라정신연구원장’이신 이언 김동수교수님이, <이언 김동수교수 시문학 방>에 <생멸법과 인과응보>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우리 다시 한 번 마음에 되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유해 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생멸법(生滅法)입니다.

우주 만물은 인연 따라 나타났다(生) 인연 따라 사라진다(滅). 하지만 이러한 생멸(生滅)이 그냥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 없이 이어져 또 다른 생멸을 거듭하고 있으니, 이것이 곧 연기(緣起)요, 무상(無常)이고 공(空)이다.

그러면서 그 공(空)과 멸(滅)에서 만물이 다시 생(生)하니, 불생불멸(不生不滅) 부증불감(不增不減)의 세계요, 아인슈타인이 말한, 질량과 에너지가 동등하게 호환된다는 ‘등가(等價) 원리(E=MC2)’이기도 하다. 예컨대 하나의 양초(질량)가 탈 때 거기에서 발산되는 열과 빛이 동등한 에너지(氣)로 변환되니, 이 또한 늘 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 세상은 원자(原子)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무한히 펼쳐지는 연기의 장(場)이다. 그리고 원자가 양(陽)의 원자핵(양성자+중성자)과 음(陰)의 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 양성자와 중성자속에는 또 수많은 불가시적(不可示的) 미립자들이 모여 생명(生滅)을 거듭하고, 이것들이 다시 분자(分子)를 이루고, 그 분자들이 모여 비로소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시적(可視的) 물질계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한 입자의 멸(滅)은 다른 입자 생(生)의 원인이 되어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입니다.

하나의 입자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하여 무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입자가 또 나타났다고 하여 무언가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입자가 사라졌다는 것은 다시 무엇인가 생겨나는 준비과정이며, 하나의 입자가 나타나는 것 또한 하나가 사라져 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순간에도 제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다. 낮과 밤이 나타나고 사라지듯,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생(生)과 멸(滅)은 본디 없다. 원자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연기의 장(場)일뿐, 삼라만상 모두가 예외 없이 무진한 연기의 무대 위에서 생멸을 거듭하며 나타나고 사라질 뿐이니, 천지자연은 참으로 냉정하고 엄혹한 진리의 화엄경이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그저 생(生)하는 것도 없고, 그저 멸(滅)한다는 것도 없다. 생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으니 이것이 도(道)요, 생이 있는 그 자리에 바로 멸이 존재하며, 멸이 있는 그 자리에 바로 생이 존재하는 불생불멸의 세계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가 생긴 것만을 볼뿐, 그러기 위해 하나의 물질이 소멸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멸’이 곧 ‘생’이고 ‘생’이 곧 ‘멸’이니, 생(生), 그 자리가 곧 불생불멸의 중도(中道)요, 멸(滅), 그 자리에서 또한 생이 태어나니, 생과 멸이 불일불이(不一不異)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라 하겠다.

 

셋째,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입니다.

인과응보란 인과(因果)의 법칙, 곧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 말과 행동들은 인(因)이며 이것들이 나중에 어떤 연(緣:조건)을 만나 그에 상응하는 과(果)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인과응보의 원리는 네 가지 법칙에 의해 작동된다. 첫째는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남을 괴롭히면 미래의 불행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현재는 괴롭더라도 그것을 참고 견디면 미래가 편안해지는 것, 셋째는 선(善)한 일을 한 결과로 미래에 더 좋은 과보를 받는 것. 넷째는 나쁜 짓을 한 결과로 나중에 고약한 과보를 받는 것.

이 네 가지 길에서 우리가 결코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또 정의나 의리를 내세우면서 남을 이용하는 일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인선(善人善果)과 악인악과(惡人惡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인(因)과 연(緣)을 자신이 만들며, 그 과(果) 또한 자신이 받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세계를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어떻습니까? 정말 <생멸법과 인과응보의 진리>를 수도인도 아닌 분이 아주 과학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설하신 것이 참으로 대단하시지 않은가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12월 2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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