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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디올 냄새..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칼럼] 디올 냄새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01/17 08:43 수정 2018.01.18 10:00
▲덕산 김덕권칼럼니스트, 전 원불교문인협회장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 : 1905~1957)을 아시지요?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 세계의 패션을 이끈 프랑스의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입니다. 옛날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 ‘디올’이라는 청년이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비료 공장을 운영했는데, 바람이 불면 거름 냄새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때마다 “디올 냄새가 난다”라고 말했지요. 이런 놀림과 따가운 시선에 ‘디올’의 어머니는 악취를 없애기 위해서 열심히 꽃을 심었습니다. 이때 디올 청년이 접했던 꽃이 나중에 그가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커다란 발판이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고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후에 향수(香水)를 직접 개발하여 향수의 유명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지요.

‘디올 냄새’는 악취의 대명사였지만 지금 ‘디올 냄새’는 향수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부정적인 모습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을 때,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지금과 전혀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약점을 달리하면 강점이 됩니다. 사람도 악인(惡人)도 있고 선인(善人)도 있습니다. 아무리 악행을 저지른 악인일지라도 마음 한 번 돌리면 성인(聖人)도 되고 부처도 되는 것이지요. 한 때 제가 소위 ‘사각의 정글’이라는 권투 계에 종사한 적이 있습니다. ‘사각의 정글’이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언제나 남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치열한 싸움판이었습니다. 약자는 도태(淘汰)되고 강자만 살아남는 살벌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수단방법과 중상모략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신라의 진산(晉山)으로 알려진 지금의 창원 백월산(白月山) 아래 자리한 어느 마을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란 두 청년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우리가 이렇게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여 지낼 수가 없지 않은가?” “자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나도 동감일세.”

이들은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갔습니다. ‘박박’은 북쪽에 판잣집을 만들어 살면서 아미타불을 염송했고, ‘부득’은 남쪽 고개에 돌무더기를 쌓아 집을 만들어 살면서 미륵불을 성심껏 구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성덕왕 8년(709) 4월 8일.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릴 무렵, 20세 안팎의 아름다운 한 낭자가 난초 향기를 풍기면서 박박이 살고 있는 판잣집으로 찾아들었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글을 지어 박박 스님에게 올렸습니다.「갈 길 더딘데 해는 져서 먼 산에 어둠이 내리니 길은 막히고 성은 멀어 인가도 아득하네. 오늘 이 암자에서 자려 하오니 자비스런 스님은 노하지 마소서」글을 읽은 박박이 생각할 여지도 없이 한마디로 거절했죠. “절은 깨끗해야 하므로 그대가 머물 곳이 아니오. 지체마시고 어서 다른 곳으로 가 보시오.”

낭자는 다시 부득이 살고 있는 남 암(南庵)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대는 이 밤중에 어디서 왔는가?” “맑고 고요하기가 우주의 근본 뜻과 같거늘 어찌 오고감의 경계가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스님의 뜻이 깊고 덕행이 높다는 풍문을 듣고 보리(菩提)를 이루는 데 도움을 드릴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답한 낭자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습니다.「해 저문 깊은 산길에 가도 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네. 대나무와 소나무 그늘은 그윽하기만 하고 시내와 골짜기에 물소리 더욱 새로워라. 길 잃어 잘 곳 찾는 게 아니고 존사(尊師)를 인도하려 함일세. 원컨대 내 청을 들어주시고 길손이 누구인지 묻지 마오.」

부득은 이 게송을 듣고 내심 몹시 놀랐습니다.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은 아니나, 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밤이 깊어지자 부득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벽을 마주한 채 고요히 염불삼매에 들었습니다.

새벽녘이 되자 낭자는 부득을 불렀습니다. “스님, 제가 산고(産苦)가 있으니 스님께서 짚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부득이 불쌍히 여겨 자리를 마련해 준 뒤 등불을 비추니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다시 목욕하기를 청합니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일었으나 어쩔 수 없이 물을 데우고 낭자를 통 안에 앉혀 목욕을 시키기 시작했죠. 낭자가 부득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스님께서도 이 물에 목욕을 하시지요.” 마지못해 낭자의 말에 따라 목욕을 한 부득은 또다시 크게 놀랐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더니 자신의 살결이 금빛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옆에는 연화좌대(蓮華坐臺)가 하나 마련되어 있었지요. 낭자가 부득에게 앉기를 권했습니다. “나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이오. 대사를 도와 대 보리를 이루게 한 것입니다.”

말을 마친 관세음보살은 홀연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한편 북 암(北庵)의 박박은 날이 밝자 “부득이 지난밤 필시 계를 범했겠지. 가서 비웃어 줘야지” 하면서 남 암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부득은 미륵존상(彌勒尊像)이 되어 연화좌 위에 앉아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요! 박박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며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리 되셨습니까?”

부득이 그간의 사정을 말하자 박박은 자신의 미혹함을 탄식했습니다. “나는 마음에 가린 것이 있어 부처님을 뵙고도 만나지를 못했구려. 먼저 이룬 그대는 부디 옛 정을 잊지 말아 주시오.” “통 속에 아직 금물이 남았으니 목욕을 하시지요.” 박박도 그 물에 목욕을 하고 무량수(無量壽)를 이루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다투어 법을 청하자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의 요지를 설한 뒤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고 합니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범부(凡夫)가 깨쳐 부처가 되며, 제자가 배워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범부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아무리 저 같이 새카만 중생이라도 대도(大道)에 한 번 발심하면 불보살의 위(位)에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서어서 참다운 실력을 얻어 ‘디올 냄새’를 향수로 만들고, ‘노힐부득’ ‘달달박박’ 같이 미륵이나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되어 승천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월 1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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