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바쁘게 산다. 서울의 출퇴근 시간에 전철을 타 보면 이게 교통수단인지 화물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오직했으면 전철 문이 닫히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밀어 넣어 태우려고 한때 푸시맨이라는 직업도 생겨났었을까.
여기에 남대문 시장에 가보면 삶의 치열한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발 디딜틈도 없이 좁은 거리를 오가는 인파들, 좌대에서 물건 파는 상인들의 호객 외침소리들, 두어 평이나 됨직한 골목 안 노상 간이식당에서 줄지어서 음식을 허겁스레 먹는 식객들······.
그 것 뿐인가?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이건 간에 경쟁의 굴레바퀴에서 엇나가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머리를 싸맨다. 최고의 연봉을 자랑하는 대기업에 들어간 젊은이들은 일에 지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그래 요즘 인기가 최고라는 공무원이 되겠다고 고시촌으로 몰린다.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기 위해서다.
모두가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외롭고 고독한 군생들의 참모습이다. 그래서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며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했었던가? 뚜렷한 정체성을 갖지도 못한 체 시간의 흐름에 걸터앉아 막연히 내일로 향하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일에 쫓겨 살며 일상의 무게를 안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정말 현대인들은 숨고를 여유도 없이 초고속의 인생 열차를 타고 달린다. 요즘 인터넷이나 카톡으로 널리 회자되는 《세월 열차》라는 시 같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지금, 프랑스의 떼제베 일본의 신칸센 대한민국의 KTX보다 수십 배나 더 빠른 초특급 고속 세월열차를 타고 인생여행을 하고 있다네...”
이제는 좀 여유를 갖자. 여유가 있어야 사람이 생각도 좀 하면서 삶의 의미도 음미해 보고 그럴 게 아니겠는가? 법정 스님은 다람쥐 쳇바퀴 속에 쉼도 없이 돌고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라.”, “하찮은 생각을 제쳐두고 삶의 본질에 눈을 돌려라. 그래야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쉴 틈 없이 수선스러운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현대인들의 심리를 반영하여 열리는 별난 대회가 있다. 이름 하여 ‘멍 때리기 대회’다. 멍 때리기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것’을 뜻하는 속어다. 그냥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한눈을 팔거나 넋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멍 때리기 대회는 현대인들이 빠른 속도와 경쟁사회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멀리 떨어지는 체험을 하자는 것이 취지다.
전문가들은 뇌가 끊임없는 자극을 받는 시대에 멍 때리기는 효과적인 휴식 방법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멍 때려라』의 저자인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동원 교수는 멍 때리기는 효율적으로 뇌를 재정비하는 기회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뇌는 휴식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채울 수 있는 여백을 만드는데, 현대인의 머리는 휴식할 시간이 없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신경증적인 불안감이 24시간 SNS에 접속하게 하는 등 무언가를 찾아 헤매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역시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적게 보고 적게 듣고 필요한 말만 하면서 단순하고 간소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해지는 길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는 삶을 차분하게 돌아 볼 여유를 빼앗아 간다. 그래서 행복해지려면 아쉬운 듯 모자라게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존 나이스 비트는 '현대인들은 24시간 내내 기술 중독시대에 살고 있다' 말한다.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정보통신 장비를 대하든지 손에 달고 산다. 직장에서는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을 해야 하고 사무실을 나와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모바일 기기를 끼고 살아야 한다. 이러다 보니 요즘 사람들에게는 시간도 빠르고, 그래서 시간이 부족하고 머리는 복잡하다. 두뇌가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의학적으로 현대인들의 뇌파를 측정해 보면 베타파대역(14~21Hz)에 속해 있다. 사람의 뇌 속에는 여러 가지 뇌파가 나온다. 그중에 깨어있는 동안에 가장 지배적이고 강력하게 활동하는 뇌파가 바로 베타파다. 이것은 사람에게 불안, 흥분, 긴장을 유발하여 100% 몸에 해로운 스트레스를 주는 뇌파다. 현대 사회구도가 복잡다단하다 보니 스트레스 정도가 더 세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감으로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듣고, 본다고 할지라도 남는 것은 점점 스트레스와 피로뿐이게 된다. 우리사회가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은 바로 이 베타파의 영향 때문이다. 출세를 추구하는 지금처럼 욕구가 과한 구도에서는 점점 더 베타파에 노출되어 있어서다. 현대인들이 번아웃(소진) 현상을 느끼는 이유다.
프랑스의 철학자이면서 에세이 작가인 삐에로 쌍소가 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 저자는 느림과 신속함이 벌리는 열띤 공방전의 세상에서 ‘느림이 미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현대 속도 문화의 가장 커다란 비극은 안식의 상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안식을 회복하는 것이 현대문화의 구원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쌍소가 얘기하는 대로 ‘아침마다 떠오르는 햇살을 바라보는 감동’을 모른 체 일상에 빠져 베타파 속에 허덕인다.
옛날에 말이 주요 교통수단이었을 때 10시간에 가던 길이 지금 자동차로는 1시간에 갈 수 있다. 컴퓨터가 도입됐을 때 사람들은 환영했다. 손으로 일했던 때에 비해 시간이 굉장히 절약되어 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오히려 교통이 빨라지고 컴퓨터가 대신 일을 해주는 만큼 시간은 점점 더 부족해지고 일은 더 많아졌다. 결국 과거보다 마음의 여유는 더 쪼그라든 것이다.
이제 여유 있는 삶을 즐기자. 덴마크의 라이프스타일인 ‘휘게(Hygge)'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생활의 여유를 누리도록 해보자. 얽매이며 복닥대고 자극적인 재미보다는 만족감과 충만감이 넘치는 자유로움 말이다.
그것이 행복일 것이다. 휘게가 덴마크 사람들의 주요 행복요소다. 그래서일까.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 이인권 논설위원장 / 커리어 컨설턴트
중앙일보, 국민일보, 문화일보 문화사업부장과 경기문화재단 수석전문위원과 문예진흥실장을 거쳐 2003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CEO)를 지냈다. ASEM ‘아시아-유럽 젊은 지도자회의(AEYLS)' 한국대표단, 아시아문화예술진흥연맹(FACP) 국제이사 부회장,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부회장,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부회장, 국립중앙극장 운영심의위원, 예원예술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긍정으로 성공하라> <경쟁의 지혜> <예술경영 리더십> <예술의 공연 매니지먼트> <문화예술 리더를 꿈꿔라> <석세스 패러다임> 등 14권을 저술했으며 한국공연예술경영인대상, 창조경영인대상, 대한민국베스트퍼스널브랜드 인증, 2017 자랑스런 한국인인물대상, 대한민국인성교육대상, 문화부장관상(5회)을 수상했으며 칼럼니스트, 문화커뮤니케이터, 긍정성공학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