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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행복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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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행복 론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8/01/19 08:34 수정 2018.01.22 11:38
▲사진: 전 문인협회장 김덕권 칼럼

행복 론

극락정토(極樂淨土)는 어디일까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살고 있는 아주 깨끗한 세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지요. 극락정토는 여기서 서쪽으로 10만 억 불국토(佛國土)를 가면 있다고 하는 이상향(理想鄕)입니다. 그러나 극락정토는 다른 곳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여기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자들이 바라는 세계가 극락정토입니다. 내가 부처가 될 때, 세상이 극락정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한국사회는 지옥과도 같다하고 많은 사람이 불행하다고 아우성입니다.

여기가 극락이고 정토인데 어찌 인생이 고해(苦海)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삼독 심(三毒心)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삼독심이란 탐심(貪心)과 진심(嗔心) 그리고 치심(癡心)입니다. 이 세 가지 삼독심만 버리면 바로 우리는 부처도 되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럼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행복(幸福, happiness)은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감정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이지요. 또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 하거나 또는 희망을 그리는 상태에서의 좋은 감정을 말할 것입니다.

행복에는 ‘만족’ ‘기쁨’ ‘즐거움’ ‘재미’ ‘웃음’ ‘보람’ ‘가치 감’ ‘평온 감’ ‘안정’ ‘의욕’ ‘희망’등의 여러 요소가 포함됩니다. 이들 각각의 단어들이 의미하는 행복은 각각 미묘하게 조금씩 다릅니다. 이들은 모두 일정한 좋음의 느낌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어떤 한 희망을 기준으로 그 희망이 실현되면 만족을 얻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먼저 희망이 없었더라도 현재의 상태에서 좋음을 느끼면 그 부분을 만족이라 할 수 있지요.

행복의 좋음이란,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상태를 마음에서 그려보는 상황에서도 얻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듯 행복의 개념을 이루는 내용에는 다양한 요소를 생각할 수 있지요. 특히 종교가 우리 인간의 행복에 미치는 역할은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예로 죽음은 예측할 수 없는 불가피한 손실입니다. 그러나 종교를 통해 사후(死後)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토나 천국, 극락 등, 일종의 구원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으로써, 죽음을 여느 ‘손실’에서부터 앞날에의 ‘희망’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얼굴에 항상 밝은 미소를 띠웁니다. 웃음은 인생의 불로초(不老草)로서 웃음이 얼굴에서 떠날 줄 모르는 사람 은 인생이 즐겁고 활기차고 평안 하지요. 그럼 그 부처가 되어 행복을 만드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그 부처가 되어 행복을 만드는 방법을 한 번 알아봅니다.

첫째, 탐욕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욕심도 정도껏 부려야지요. 인간들이 그렇게 탐욕을 부리니 하늘이 벌을 내려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둘째, 진심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치고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화날 일이 생기면 우선 멈추는 것입니다. <一 + 止 = 正>입니다. 한 번 멈추고 단전(丹田)까지 숨을 두서너 번 들이 쉽니다. 그러면 화가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 조근 조근 대화를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요.

셋째, 치심을 없애야 합니다.

치심이란 어리석은 마음을 말합니다. 진리를 깨쳐야 지혜를 얻습니다. 지혜란 ‘일의 이치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바르고 슬기롭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에 걸림이 없어서 복과 혜를 누릴 것입니다.

넷째, 고난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고난에 굴복하고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다섯째,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루를 좋은 날로 만들려는 사람은 행복의 창조자가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라고 미루며 시간을 놓치는 사람은 불행의 하수인이 됩니다.

여섯째, 망각(忘却)의 기쁨도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에는 기쁨도 슬픔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리고 슬픔의 순간만을 기억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슬픔의 순간은 빨리 잊는 것입니다.

일곱째, 만족을 아는 것입니다.

만족을 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하지요. 가난에 안분하는 것이 안빈낙도(安貧樂道)입니다

여덟째, 용서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운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미운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반비례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정비례합니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는 것이지요.

아홉째, 감사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라도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원망생활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감사생활 하는 사람은 복이 굴러들어오고, 원망생활 하는 사람은 불행을 몰고 옴을 잊으면 안 됩니다. 잘 된 것은 ‘네 덕’이고, 잘 못된 것은 ‘내 탓’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아홉 가지 부처가 되어 행복을 만드는 방법이요? 부처가 따로 없습니다. 행복이 따로 없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는 내 손안에 있으니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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