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었다. 신나게 읽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들녘, 2015년 3월 펴냄)는 도합 1200쪽 가까이 되는 두 권의 육중한 책이지만, 숨 가쁘게 즐겁게, 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대통령 재임기로 본다면 우드로 윌슨부터 버락 오바마 행정부까지의 미국 역사를 다루고 있다. 20세기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까지, 미국이 어떤 국내외 정책을 추진했으며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무엇을 달성하기 위해 애써왔는지 서술한다.
저자들은 서론에 아주 분명하게 밝힌다. "우리는 미국 역사의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이 잘한 많은 일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대신 저자들은 "미국의 어두운 측면"에 관심을 가진다.(1권 10쪽) 특히 미국이 20세기 내내 전 세계를 상대로 확산해 온 군사정책과 그 정책이 키운 미국의 힘,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해 온 보수 세력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다. 말하자면 미국이 감추고 싶어 할 만한 탐욕스럽고 부끄러운 역사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열심히 읽다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라니. 원제가 "untold"이니 조금 더 강조된 어감은 있지만 원래 뜻에서 아예 어긋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이 책은 그간 이야기되지 않은, 그리고 지금도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는, 미국 현대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 말하지 않아 온 역사?
그렇지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이 다룬 내용들은 이미 충분히 이야기되었던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미국사를 전공한 전문 역사가가 아니라도 알 만한, 미국이 남미 정권 교체에 어떻게 개입해서 미국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강요했는지, 미국이 소련과 맺은 협약을 얼마나 여러 차례 무시하거나 유보해 냉전을 강화했는지, 무기 밀거래나 불법적 군사행동을 통해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분쟁을 영구화해왔는지, 그런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이 글을 읽을 대부분의 독자들이 살아온 시기에 벌어졌던, 신문에서라도 읽었어야 할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훌륭한 책의 제목으로 말꼬리를 잡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 이 책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말한" 미국 현대사를 다시 밝히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데도 저자들은 왜 이것을 "말하지 않은 역사"라고 했던 것일까. 아마 그건 사람들이 여전히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다시 이야기할 테니 이제는 제발 좀 들어보라고, 그동안 너무 은근히 밝히고 알아채주길 기다렸던 것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직설적으로 가감 없이 노골적으로 암흑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밝힐 테니, 좀 읽어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여전히 이렇게 깡패 노릇을 하고 있는 미국을 좀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읽으라는 저자들의 외침에 동참하고 싶은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대학에서 미국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국으로 꼽히면서도 이 나라의 작동 방식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늘 한다. 여기 각종 고급 사료와 정보에 충실한, 매우 생동감 넘치게 써진 미국 현대사 책이, 번역도 훌륭하게 나왔으니, 두루 읽기를 강력히 권하고 싶다.
미국의 그늘에서 살면서도 미국을 잘 모르는 한국…두루 읽기를 강력히 권한다
서론과 14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내용을 다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이 책의 특성을 중심으로 가장 감탄하며 읽었던 부분들을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로 이 책은 미국의 외교 정책과 경제 정책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꾸준히 보여준다. 미국의 외교 및 국방 정책은 대선의 흐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그 일례가 바로 1948년 미국의 이스라엘 승인 문제이다. 종전 직전까지도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미국은 아랍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건국 11시간 후 전격적으로 승인을 결정했다. 내각에서 중동 산유국이자 우방국들과의 관계 단절을 우려한 조언들이 있었으나 대통령의 선택은 이스라엘 승인이었는데, 이때 중요하게 고려된 것은 바로 미국 내 유대인의 표였다는 것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당시 "아슬아슬한 선거에서 아랍계 표가 당락을 가른 경우는 없다"고까지 발언하며(1권 370쪽)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고, 과연 그해 말 선거에서 말한 대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머쥔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미국의 외교 안보 정책이 석유 자원의 확보 문제와 얽혀 있다는 것 역시, 이 책에 수차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석유는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에 비로소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었고, 이로 인해 산유국과의 외교 문제는 미국의 중대한 사안이었다. 이스라엘 문제도 결국은 미국의 중동 전략 파트너라는 관점에서도 조망될 수 있을 것이고, 이란과 이라크에 대한 개입의 역사 역시 석유를 빠뜨리고는 생각할 수 없다. 국방·군수산업에 필수적인 석유의 확보를 통해 미국 기업의 제한 없는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탁월하게 설명되어 있는 주제는 냉전의 시작과 전개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사람은 단연코 트루먼 대통령이다.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라는 엄청난 전임자의 그림자 속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 제2차 세계대전의 마무리라는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은, 어찌 보면 우연히 선택된 사람이다. 이 책은 트루먼의 등장과 그의 선택이 냉전의 시작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낱낱이 밝힌다. 트루먼은 전임자와는 달리 스탈린의 소련과 협조적인 관계를 만들 수 없다고 믿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그가 핵무기를 사용했던 것이 일본을 처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의미가 더 컸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이제 드물 것이다. 트루먼은 지속적으로 흑백논리의 구도로 세계를 파악했고, 소련의 물리적 힘을 과장해서 생각했으며, 그렇게 일부 가공된 적과 전 세계를 무대로 싸우는 것을 미국의 임무로 만들었다.
저자들은 루스벨트에서 트루먼으로의 교체라는 역설적 상황을 약 20년 후 존 F. 케네디에서 린든 B. 존슨 대통령으로의 교체라는 역설적 상황과 대비한다. 두 경우 모두 대통령 유고에 의한 부통령의 승계인데, 전자는 노령과 지병으로 인한 사망이 촉발한 것이고 후자는 암살에 의한 것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그 이후의 상황 악화가 상당히 유사하다. 1963년 암살되기 전 몇 달간 케네디는 베트남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소련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의 선제적 평화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연설을 했다.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고 있을까요? 미국이 전쟁 무기로 세계에 강제하는 팍스 아메리카나는 안 됩니다. (…) 미국 및 그 동맹국들과 소련 및 그 동맹국들은 공정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고 군비경쟁을 중단해야 할 공동의 이해관계와 책무가 있습니다."(1권 520∼521쪽) 이처럼 케네디 행정부가 냉전을 종식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그 후임자인 존슨은 소련과 등을 지고 베트남전쟁의 확전을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제5장의 제목 "냉전 : 누가 먼저 시작했나?"에 대한 답은, 본문에서 그렇게 찾을 수 있다. 루스벨트와 스탈린이 일궈왔던 모종의 협력적, 상호 이해 관계를 무너뜨린 것도, 케네디와 흐루쇼프 사이에 만들어지고 있던 냉전 종식의 분위기를 신기루처럼 날려버린 것도, 미국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냉전을 먼저 시작했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화해를 미루고 상대를 거부하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냉전을 장기화하고 악화시켰다. 후일,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와의 전략무기 및 중거리 핵무기 감축 회의를 결렬시키는 행동을 통해 해빙기의 냉전을 다시 얼음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문제는 거의 항상 미국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거의 항상 미국이었다
적대 관계의 고착화와 군비경쟁에 대한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의 대통령들은 아무도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가 그토록 엄중하다는 것이 이 책의 세 번째 특징이라 할 만하다. 이 책에 따르면, 그 어느 대통령도 미국의 해외 군사 활동이나 미국 기업의 불법적 특혜 수혜를 추진하고 증가시키지 않은 사람이 없다. 케네디도 최후의 몇 개월 전에는 쿠바나 베를린 위기 상황, 베트남 군사고문단 파견 등을 통해 소련과 갈등을 증가시켰고, 핵전쟁의 공포를 부각하는 정치를 했다는 것을 밝혔다.
저자들은 미국인들에게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성공적인 대통령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시각을 감추지 않는다. 이 책에서 "14개조 평화 원칙"으로 유명한 윌슨은 속 좁고 고상한 척하지만 실무 능력이 매우 부족한 책상물림으로 보이고, 트루먼은 자신에게 주어진 막대한 힘(원자폭탄)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 났지만 정작 세계정세 파악에 서툰 시골 영감으로 평가되는 듯하다.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의 존재에 대해 경고를 날렸다고 알려진 아이젠하워는 임기 내내 바로 그 군산복합체의 성장에 기여할 군사 개입 정책과 국방 안보 비용 증가를 추구했으며, 그의 임기 중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이란, 한국, 과테말라 내전에 핵무기 사용까지 고려했던 대통령이었다.
민주당, 공화당 가리지 않고, 미국의 지도자들은 냉전의 한길을 추구한 것으로 증명된다. 심지어 취임 때까지도 온건 진보의 성향으로 방위비 삭감을 공약으로 내걸기까지 했던, 핵 문제에 대해 미국의 위선적 이중 기준을 비판하기도 했던, 지미 카터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온적 외교정책으로 재임기에는 인기가 없었고 재선에도 실패하는 대통령이었지만, 퇴임 후 오히려 세계 평화나 빈민 지원 사업을 통해 존경받는 원로가 되어 있는 카터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훌륭"할 뿐이다.
카터는 외교 경험이 전무하다는 약점 때문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같은 매파 참모들에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소련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여 대소 관계를 경직시켰고, 이란 국민이 증오하는 샤를 지지하며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었고, 엘살바도르 독재 정권에 대한 군사원조를 재개했으며, 마침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소련의 침공에 대해 "군사력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격퇴"하겠다고 선언(2권 144쪽)했다.
결국 카터는 국방비를 증액하는 또 한 사람의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에 대해 저자들은 "어둠의 세력에 문을 열어주는" 유산을 남겼다고 냉혹하게 평가한다. 그가 시작하거나 용인한 무기 판매로 인해 후임자 레이건과 부시 일가의 정책을 합리화해주었고, 분쟁의 장기화, 냉전의 재개, 그리고 나아가 9.11테러로까지 이어지는 문제의 씨앗을 틔웠다는 것이다.(2권 109쪽) 카터의 우유부단함이 미국의 힘의 일시적 약화를 초래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냉전 이후의 새로운 군사정책의 시대를 시작했다는 평가는 신선하다.
제2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레이건이나 부시 일가에 대한 평가는 잘 알려진 대로이다. 이들은 냉전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군수산업이 번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적을 상대로 국방, 안보, 심지어 우주 방위 정책까지 추진했다. 9.11 이후에는 공포심 조장을 통한 테러와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미국 안팎의 잠재된 공격 가능성과 보이지 않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싸움을 확대해왔다. 이에 대해서는 심지어 냉전 시대 매파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브레진스키마저 "이런 히스테리는 그만하자. 이런 편집증은 그만 끊자. (…) 앞으로 테러 공격에 직면하더라도 (…) 제발 분별력을 보여주자. 우리의 전통에 충실하자"고 촉구할 정도였다.(2권 353쪽)
저자들의 주장에 따르자면, 레이건이나 부시의 출현은 이미 오래전부터, 윌슨 행정부부터가 아니라면 늦어도 트루먼 행정부에서 본격화된 냉전의 역사 속에서 잉태된 것이지만, 그것과 본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냉전은 적어도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수사는 갖췄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내국인의 인권까지 침해함으로써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할 역사, 미국이 "가지 않은 길"
놀라운 것은 미국이 이와 같이 발전해 갈 것을 예측한 듯, 전쟁에서 이윤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자는 사람이 있었다. 1934년의 일이고, 제럴드 나이라는 상원의원이었으며, 공화당 소속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대출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금융 세력이 참전의 압력을 가했다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나이는 "전쟁 불사를 외치는 국수주의자나 전쟁을 꿈꾸는 사람은 줄어들고, 전쟁을 예방할 수" 있도록 무기 산업을 국유화하고 전시 세금을 대폭 올리자고 주장했다.(1권 144쪽) 오늘날과 같이 국방·군수산업에 미국의 경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주장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이러한 발상이 이미 대공황 시절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할 만하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네 번째 장점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인물들을 조명하여 미국이 "가지 않은 길"을 넌지시 제시한다. 헨리 월러스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루스벨트의 세 번째 임기의 러닝메이트로서 부통령을 지냈으나, 정작 루스벨트가 서거하기 직전인 1944년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로 선택되지 못한 사람이다. 그 경선에서 민주당원 투표 결과는 월러스가 부동의 1등이었는데, 당 실세들의 밀실 흥정의 결과 선택된 것이 애초에 당원 선거에서 여덟 명 중 8등을 했던 트루먼이었다. 결국 그가 이듬해 루스벨트를 승계하고, 원자폭탄을 던지고, 냉전을 시작하는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은 어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월러스는 농학자였고 뉴딜 정부의 농무장관을 역임한 사람이었다. 농가 보상금 정책, 면화 생산의 감축을 추진했고, 인종주의를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대표를 자임했으며, 돈의 관점보다는 인간의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라고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국가를 꿈꾸는 미국인들에게 모든 제국은 잘못되고 부도덕한 것이며, 군사적 제국주의도 경제적 제국주의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꾸준히 했다. 월러스는 트루먼 행정부에서 상무장관으로 임명되었는데, 무르익어가는 냉전 전략에 강력히 반대했고, "과거의 모든 역사는 군비경쟁이 평화가 아니라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군사비 지출의 대폭 감축을 요구하다가 경질되었다.(1권 341쪽)
평화에 대한,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월러스의 연설과 글이 이 책의 여러 곳에 길게 인용되어 있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대안적 모색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제시하고픈 저자들의 의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미국은 냉전과 탈냉전,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까지 치르는 동안 경제를 국방·군수산업에 심하게 의존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안보 경제의 특수 속에서 "최상위 부자들이 자유시장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베일 뒤에 숨어 줄기차게 (미국의) 국부를 털어가"게 내버려 두었다.(2권 353쪽)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부자들의 세금이 얼마나 깎였는지, 실질 최저임금이 얼마나 줄었는지, 반노동정책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실현되었는지, 빈민의 비율이 얼마나 늘었는지, 이 책은 명확한 수량 증거로 알려준다.
거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이지만, 굳이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 책이 지극히 대서양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대한 전략의 비중이 거의 없으며, 중국은 제2권의 끝에야 등장한다. 최근의 경제 성장에 비추어 그리 어색한 등장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20세기 내내 유럽, 중동, 남미 등지에서 이뤄진 미국의 활동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자들의 결론은 희망적이기도, 절망적이기도 하다. 월가 점령 등에서 보이는 국내 개혁의 움직임이 무언가 물꼬를 틀 수 있다고 하면서도, 과연 오바마가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많은 일을,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그가 제시하는 비전이나 믿고 있는 신념이 국가 정책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동안 미국을 만들어 온 것이 대통령들일까? 오바마 한 사람의 결정으로 미국이 그동안 가지 않았던 길을 시작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무엇을 포기해야 미국이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정계와 군부와 학계, 그리고 재계가 밀접하게 결탁하여 국가를 한 방향으로 꾸준히 이끌어왔으며, 그 열매는 극히 소수의 집단이 독차지했다는 이 책의 증언이 이미 그 대답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박진빈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