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각 종교의 숨은 신(神)은 바로 ‘돈’이라고 한다. 불교의 붓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예수는 2인자라는 것이다. 최근 화쟁문화아카데미가 연 종교포럼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에서 나온 얘기다. 종교 전문가들은 “오늘날 한국 종교는 스스로가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고 혹독하게 질타했다. 천주교의 경우 “주교들은 사장이고, 본당 사제는 프랜차이즈 지점장이 되어버린 꼴”이라는 말도 들었다.
모름지기 종교란 ‘가난의 정신’이 시작이고 끝이 아닌가. 붓다와 예수는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는 사람들을 껴안아서 위대해졌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즉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이 있다’(마태복음 19장)고 했다. 붓다 역시 소유의 욕망을 끊는 곳에 도(道)가 있다고 했다. 붓다 생전에 아사세 왕이 켜놓은 1만개의 큰 등은 하룻밤 만에 다 꺼졌으나 가난한 여인 난타가 밝힌 1개의 등은 더욱 빛났다는 ‘빈자일등’ 이야기는 유명하다.
평생을 청빈의 탁발승으로 산 천주교 성인 프란치스코는 성자 중의 성자로 불린다. 현 교황 프란치스코도 “교회 안에 영리성이 들어오는 순간 추해진다”며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강조해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불교에는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는 격언이 있다. 춥고 배고파야 도를 닦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해방 후 한국불교를 이끌었던 청담 스님은 제자들에게 “흐르는 개울물도 아껴 쓰라”고 가르쳤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콩나물을 보면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스님들의 살림살이와 정신은 청빈하기 그지없었다.
법정 스님 하면 지금도 바로 ‘무소유’가 떠오를 정도다. 김수환 추기경, 한경직 목사도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잡았다. 그랬던 종교가 이제 가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슬프다. 사실 돈이 붓다와 예수를 대신하는 시대라는 지적이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종교의 세속화와 성장주의에서 비롯된 성직자들의 일탈행위를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이젠 한국의 종교들이 좀 더 낮아지고 가난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