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에서 태극기를 불태운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경찰이 속전속결로 체포부터 압수수색, 구속영장 신청까지 했으나 법원이 영장신청을 기각함에 따라 무리한 수사였다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등 언론보도에 따르면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이승규 부장판사는 1일 “김씨가 집회현장에서 매우 흥분된 상태에서 우발적, 충동적으로 국기 소훼행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은 또한 계획적조직적으로 범행을 했다는 점이 밝혀지지 않은 점, A씨가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점, 범죄전력이나 수사를 받은 경험이 없다는 점을 종합할 때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할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 29일 A씨의 어머니 집 근처인 경기도 안양에서 그를 체포해 조사했다. A씨가 태극기를 태우는 사진이 여러 언론에 보도되고 여당 의원들과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 지 한 달 반만의 일이다. 경찰은 체포 이후 A씨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어 경찰은 31일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국기모독죄’에, 해산명령 불응죄, 일반교통방해, 공용물건손상죄 등 집회 참가들에게 부여되는 혐의까지 포함됐다.
구속영장 기각은 예견된 일에 가깝다. 수사 초기부터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A씨가 태극기를 가져간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던 종이태극기를 태웠다는 점에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기모독죄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을 때만 유죄로 인정된다.
영장실질심사 전 A씨 측 정민영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애초에 태극기를 태우려는 목적이 있었다면 준비를 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집회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하던 사람들 간의 상당히 격한 충돌이 있었고 (A씨가) 감정적으로 격해져 경찰들에게 항의의 의사 표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경찰이 국기모독죄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례는 있지만 영장신청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 변호사는 “대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A씨가 다 인정하고 있다. 국기를 안 태웠다는 게 아니라 태웠는데 법리적으로 처벌 대상인지 따져보자는 것이고, 집회 현장에 있었던 것도 본인이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증거인멸 하려고 해봐야 특별히 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굳이 구속해서 수사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또한 경찰의 긴급체포에 대해서도 “A씨는 소환요구가 있으면 당연히 나갈 생각이었다. (경찰은) 잠복하고 뒤를 쫓다가 어머니를 만나는 곳에서 체포했는데, 굳이 체포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소환해서 조사하면 될 문제 아닌가”라고 밝혔다.
이광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국기모독죄가 수사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우리사회가 후퇴한다는 느낌이다. 과거 회귀적인 정권의 분위기와 보수언론의 여론몰이의 희생자”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또한 “설사 수사대상이 된다 해도 구속영장의 사유인 범죄의 중대성이나 증거인멸, 도주우려가 소명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범죄행위나 과정이 드러난 것에 비춰 영장 청구한 것 자체가 무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