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교수의 ‘닥치고 혁신’이 놓친 세가지
‘기득권 타파’ 주장은 노선에 대한 고민 빠진 정치공학적 발상
‘삼시세끼’ 없는 새정치는 ‘개평’ 챙겨주는 새누리보다 더 못해
선무당이 벌이는 어설픈 굿판으로 호남을 계몽하려 들지말라
호남 민심에 대한 조국 교수의 글을 관심 깊게 읽었습니다.
[서울=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저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세례를 받으며 청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지만, 호남 출신도 아니고 연고도 없습니다. 최근 ‘호남 민심’에 대한 정치권의 격론을 접하며 막역한 호남 친구들과 얘기도 하고, 저 나름의 관찰과 분석도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호남 민심’의 실체는 이하로 다가왔습니다.
첫째, 호남 민심은 호남 지역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공천 방식에 불만이 많다. 유능한 새 인재가 자라고 뽑힐 수 있는 틀이 아니며, ‘토호’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하여 민심을 왜곡하고 있다.
둘째, 호남 민심은 호남 현역 (다선) 의원들의 행태에 불만이 많다.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은 ‘집권당’인데,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셋째, 호남 민심은 노무현 당선에 호남의 기여도가 크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대북송금 수사를 전개했던바, 참여정부가 이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넷째, 이상의 불만은 대선 시기 안철수 지지, 근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이정현과 천정배의 당선 등으로 표출되었다. 이는 호남 민심이 새정치연합에 주는 경고다. 다섯째, 호남 민심은 ‘동교동계’의 부활이나 ‘호남 지역당’이 만들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야권 내 호남 출신 지분 확보용으로는 괜찮을지 모르나, 전국적 차원에서는 ‘호남 고립화’를 자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호남 민심은 새정치연합 내부 ‘친노 기득권’에 비판적이면서도 ‘호남 기득권’의 청산 역시 강력 희망한다.
사실 이러한 호남 민심은 전국의 진보적 유권자의 마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새정치연합은 중도보수와 중도진보의 연합정당입니다.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김한길 전 대표 등이 중도개혁을 주창하며 만든 ‘대통합민주신당’의 노선에 동의하는 분들부터, 학생운동 및 시민사회운동 출신으로 새정치연합의 ‘진보화’를 추구하는 분들까지 한 정당 안에 다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선 차이가 아닙니다. 기득권이 문제입니다.
특히 각 계파는 기득권 유지 및 확장을 위하여 호남 민심 중 일부만을 부각해 싸우고 있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 모두의 성과를 끌어안고 과오를 극복하면서 무능과 부패로 점철된 박근혜 정권과 싸워야 할 제1야당이 ‘친김대중’과 ‘친노무현’으로 갈라서서 상대를 비방하는 퇴행현상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해선 한마디 비판도 하지 않으면서 반대 계파 비판에서 목청을 높이는 몇몇 정치인의 모습 앞에서는 어이가 없습니다.
새정치연합이 해야 할 일은 계파를 넘어 기득권을 깨뜨리는 문화, 구조, 기준을 만드는 것입니다. 먼저 새정치연합의 호남 및 수도권 지역 다선 의원들의 용퇴와 ‘적지’(敵地) 출전이 필요합니다. 대구 출마를 고수하는 김부겸과 부산 출마를 고수하는 김영춘에게 배워야 합니다. 둘째, 객관적 기준을 세워 민심에 역행하는 사람들을 계파와 지위를 막론하고 물러나게 해야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긴 빈자리를 지역이나 전문분야에 확실한 능력을 인정받은 ‘신진’으로 채워야 합니다. 셋째, 경쟁, 승복, 공존의 규칙을 확립하고 구성원이 이를 내면화해야 합니다. 계파 나눠먹기를 봉쇄하는 공천 기준을 올해 내로 확정해야 합니다. 이 절차에 따른 후보 선출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은 엄중 징계해야 합니다.
이상은 김한길·안철수 대표가 못했던 일이고, 문재인 대표가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 일입니다. 지난 대선 시기 문재인에게 표를 던진 48%의 민심은 새정치연합에 요구합니다. 당장 계파 기득권 싸움을 멈추고 기득권 포기 및 타파 작업에 착수하라고. 또한 경고합니다. 이 작업 없이는 누가 대표가 돼도 패배가 기다릴 것이라고. 후보 개인과 정강과 정책이 아무리 멋져도 내부 문제도 해결 못하는 정당에 어찌 나라를 맡기겠습니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민심의 인내도 바닥나고 있습니다. 새정치연합, 닥치고 혁신!
저는 호남에서 자라서 출향하지 않고 살고 있는 향토인입니다. 중학생 때 5·18을 겪었고 청년 시절에는 고향에서 노동운동과 초창기 진보정당에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통칭 민주당 세력의 행태에 대해서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을 지지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조 교수의 지적처럼 그들이 호남에서 토호와 이른바 지벌세력의 정치적 대표로서 군림해왔기 때문입니다. 여의도의 정통 민주개혁 세력이 호남선을 타면 티케이(TK)와 다르지 않은 기득권으로 변신(또는 복귀)하는 위선이 1988년 평민당 이래 반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막대기만 꽂아도 몰표를 주는 묻지마 당선 시절은 아닙니다. 일당 독재에 대한 염증과 식상함이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그런 현상이 뚜렷합니다.
하지만 진보적 유권자의 마음처럼 현 새정치민주연합(새민련)에 대한 지역민의 정치적 실망은 개혁적인 방향으로 가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민주당 세력에 대한 심판 정서가 한때는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등을 잠깐 검토했지만 시들해졌고, 그보다 이미 징후가 나타나듯이 실리와 지역발전을 앞세운 보수 성향 무당파(로 보이는 지벌세력의 분파)가 간판을 적당하게 바꾸면서 득세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사실 지금과 달라질 것은 없는 셈이 됩니다. 호남 민심이 항상 진보적이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새민련이 직면한 위기는 바로 이른바 진보개혁 세력의 무능과 안일한 사고방식에 터잡고 있습니다. 조 교수는 새민련이 당면한 문제가 노선 차이가 아니라 기득권이라고 진단했지만 으뜸가는 문제는 역시 실체를 갖춘 노선이 없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지난 이십여년간 ‘재야출신-386-시민사회세력’ 등 다양한 모습으로 참여해온 진보개혁 세력에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그동안 공천혁명을 포함한 정당개혁을 외치고 시도했지만 간판 교체와 세력의 순환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호남기득권의 올드보이들만이 아니라 진보개혁 세력한테도 호남이 새민련에 보내는 경고가 발송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집권 기간을 포함해서 민주당 세력이 서민의 밥그릇을 양적 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결과가 신통치 않을뿐더러 부자 정당과 다른 노력조차 미미했다는 점입니다. 두 정당의 사회경제적 노선이 엇비슷한 상황이라면 개평이라도 확실히 챙겨줄 가능성이 큰 새누리에 투표하는 게 가난한 유권자의 합리적인 선택이겠지요.
과거 열린우리당의 부침은 우리에게 관념적 개혁의 한계를 가르쳐주는 사례입니다. 실물 민생에 대한 차별성이 없는 상황에서 민주와 개혁은 서민 대중에게 실체 없는 이미지요 ‘그들만의’ 열정에 불과합니다. 배고픈 유권자들은 개혁 셰프가 정성껏 마련한 삼시세끼를 먹어 본 적이 없고 그래서 믿고 표를 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조 교수가 주문한 ‘닥치고 혁신’은 세 번 이상 들은 유행가 같습니다. 인적 쇄신과 계파 청산은 정치개혁 중에서 그래도 밑천이 덜 들면서 소득이 적지 않은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새민련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고민과 계획 없이는 잘되면 정치공학적 재구성이고 못되면 반대파에 대한 숙청과 분열에 그칠 것입니다.
호남 민심의 진보성은 상대적이며, 여기엔 소외에서 벗어나 기득권의 혜택을 보려는 현실적 욕구도 존재합니다. 이런 현실에 비춰보면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반새누리-비민주당 개혁 세력 결집 주장은 허상에 가깝고 육참골단식 물갈이론은 허장성세에 그칠 수 있습니다. 민생과 집권 전략이라는 준비된 고사상이 차려지지 않으면 선무당이 벌이는 어설픈 혁신의 굿판에 호남 민심은 쉽게 계몽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