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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밀약’ 이명박 독도 방문으로 사멸..
정치

‘독도 밀약’ 이명박 독도 방문으로 사멸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5/06/03 10:45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등대 옆 전망대에서 섬을 둘러보고 있다. 독도/청와대사진기자단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최근 한-일 관계 악화의 결정적인 계기라고 꼽는 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일본 정부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직후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서 해결할 것을 제안하는 한편, 일본의 부당한 영토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국내외 홍보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앞으로 사용될 일본의 모든 초·중·고 교과서엔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기술이 포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한일협정 이후 50년을 맞는 양국 관계에 매우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방문으로 한일협정 협상 과정에서 이뤄진 이른바 ‘독도 밀약’이 사멸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실상 영유’ 묻어둔채
“해결하지 않는 것으로 해결간주”
봉합뚜껑 열어 양국관계 악영향

독도 밀약이란 한일회담이 막바지로 치닫던 1965년 1월11일 서울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고노 이치로 자민당 부총재의 밀사인 우노 소스케 사이에서 확정된 합의를 뜻한다. 이 밀약을 통해 한일 양국은 독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을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조약(한일협정)엔 언급하지 않는다”며 이 문제의 해결을 사실상 보류했다. 그 정신에 따라 6월 체결된 ‘분쟁 해결에 관한 교환공문’에선 “양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고, 이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을 경우에는 양국 정부가 합의하는 절차에 따라 조정에 의해 해결을 도모하기로 한다”고 합의한다. 양국이 서로가 ‘합의하는 절차’에 따라 문제 해결을 도모하기로 해, 한국이 합의하지 않는 한 한국의 독도 영유를 일본이 변경할 수 없는 절묘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1945년 8월 해방 이후 독도가 양국 사이에 주요 이슈로 불거진 것은 1952년 1월18일 발표된 대한민국 국무원 고시 제14호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이승만 라인)이 나오면서부터다. 이승만 정권은 일본의 선진 어업으로부터 한국 어장을 보호하기 위해 독도 동쪽에 이승만 라인을 긋고 이를 넘어선 일본 어선을 나포한다. 일본 외무성이 2010년 발간한 <일한회담 중요자료집>을 보면, 이승만 라인이 그어진 뒤 한국 당국에 의해 나포된 일본 어선은 220척이고 승무원은 2670명인 것으로 확인된다. 그로 인해 일본 정부는 자국 어민이 잇따라 나포되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한일협정 체결을 서두르라는 국내적인 압박을 받기도 했다.

독도 밀약이 실재했는지에 대해선 논란도 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지난달 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밀약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러나 밀약의 중개역으로 지목되는 그의 형 김종락씨는 2010년 8월1일 방영된 <엔에이치케이>(NHK)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밀약은 누구의 아이디어냐’라는 질문에 “(고노 부총재에게) 내가 순간적으로 말한 것이다”, ‘관련 문서는 없냐’는 질문엔 “모두 태워버렸다”고 대답하며 밀약의 실체를 증언하고 있다.

종합하자면, 양국이 독도 문제를 밀약으로 봉합했으나 이 대통령의 무분별한 행동이 이를 해체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결과로 일본의 모든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기술이 삽입됐고, 이 문제가 한-일 관계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갈등의 불씨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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