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거짓
진실은 거짓과 얼마만큼 떨어져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한 뼘도 안 되는 거리다.” “그렇게 가깝습니까?” “거짓과 진실의 거리란 바로 귀와 눈의 거리이다. 귀로 듣는 모든 것은 거짓이고,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은 진실이지”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는 교수신문의 새해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말은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 ‘사악함을 부수고 정의를 구현’하라는 가르침이지요. 2017년에 가장 많이 회자(膾炙)된 단어중 하나인 ‘적폐청산’이 파사(破邪)에 해당된다면, 올해 2018년은 현정(顯正)을 실현해야 하는 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아직은 그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했는지 요즘 벌어지는 재판을 보면 아직도 거짓이 판을 칩니다.《후한서(後漢書)》<양진전(楊震傳)>에 보면 ‘사지(四知)’라는 말이 나옵니다. ‘천지 ‧ 지지 ‧ 자지 ‧ 아지 (天知地知子知我知)’ 네 가지 앎에 대해 말한 것이지요.
중국 동한(東漢)시대에 양진(AD 50~124)이라는 큰 스승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많은 학식을 연마하였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신분이 잘나고 못남을 가리지 않고 수천 명의 제자를 길러내 ‘관서(關西) 지방의 공자’라는 별칭을 얻었던 그는 학식의 깊이와 인격의 고매함으로 당대의 사표(師表)로 받아드려졌습니다.
그런데 나이 50이 넘어서야 주변의 강력한 권유에 못 이겨 벼슬길에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양진은 벼슬자리에서 행해지는 모든 유혹에서 철저하게 벗어났습니다. 사적인 청탁 등을 철저히 배제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지요. 그가 지방의 태수로 임명되어 임지로 가는 도중에 창읍(昌邑)이란 곳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저녁 늦게 창읍의 현령인 왕밀(王密)이 찾아왔습니다. 왕밀은 양진이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 그의 학식을 높이 사 무재(茂才: 관리 등용 시험에 합격한 사람)로 뽑아 준 사람이었지요. 이런 왕밀을 양진은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나온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왕밀은 소매 속에서 황금 열 근을 꺼내 슬며시 내밀었습니다.
양진이 자신에게 베풀어 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준비한 것이니 받아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양진은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내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였지요. “나는 옛 지인으로서 자네의 학식과 인물도 기억하네. 그런데 자네는 나를 잊은 것 같군.” “아닙니다. 이건 뇌물이 아니라 지난날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뿐입니다.” “자네가 영진(榮進)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진력하는 것이 나에 대한 보답이네.”
“지금은 밤중이고, 방안에는 태수님과 저뿐입니다.” “이 사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알지 않는가!” 이에 왕밀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양진은 후에 태위(太尉)에까지 올랐으며, 그의 이 가르침인 ‘사지’ 즉, 천지 ‧ 지지 ‧ 자지 ‧ 아지 라는 말이 지금까지도 공직자의 계명(戒名)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너와 나
“지금은 밤중이고, 방안에는 태수님과 저뿐입니다.” “이 사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알지 않는가!” 이에 왕밀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양진은 후에 태위(太尉)에까지 올랐으며, 그의 이 가르침인 ‘사지’ 즉, 천지 ‧ 지지 ‧ 자지 ‧ 아지 라는 말이 지금까지도 공직자의 계명(戒名)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너와 나 하늘과 땅이 모두 안다는 뜻의 ‘사지’는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표현이기도 하지요.
며칠 전 1월 27일, 특검으로부터 징역 12년을 구형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최후 진술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의 <최후진술> 때문이지요. 이 부회장은 이날 항소심 재판에서 “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 제가 원해서 간 것이 아니고 오라고 해서 간 것뿐이지만, 제가 할 일을 제대로 못 챙겼다. 모든 법적 책임과 도덕적 비난도 제가 다 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삼성 측이 공개한 이재용 부회장의 최후진술 일부를 한 번 알아봅니다.
“대한민국에서 저 이재용은 가장 빚이 많은 사람입니다. 좋은 부모 만나 좋은 환경에서 윤택하게 자랐고,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삼성이라는 글로벌 일류기업에서 능력 있고 헌신적인 선후배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행운까지 누렸습니다.”
“저는 선대회장이신 이병철 회장님이나 이건희 회장님과 같이 능력을 인정받아 우리나라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헌신하고, 제가 받은 혜택을 나누는 참된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저는 재벌 3 세로 태어났지만 제 실력과 노력으로 더 단단하고, 강하고 가치 있게 삼성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저는 사회와 임직원들에게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병철 손자나 이건희 아들이 아닌 선대 못지않은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처럼 셋째 아들도 아니고 외아들입니다. 다른 기업과 달리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지도 않았습니다. 회장님 와병 전후가 다르지 않습니다. 건방지게 들리시겠지만 저는 자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재판장님! 모든 게 다 제 불찰이란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저와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시작됐습니다. 원해서 간 것이 아니고, 오라고 해서 간 것뿐이지만 제가 할 일을 제대로 못 챙겼습니다. 모든 법적 책임과 도덕적 비난도 제가 다 지겠습니다.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벌을 내려주십시오. 제가 모든 책임을 져야 엉클어진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이재용 삼성부회장의 말이 진실이라고 들리시는지요? 언뜻 보아 리더로서의 도량과 자신의 책임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 같지만 어째 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오얏나무 아래서 관을 고쳐 쓰려고 하면, 오얏을 따는 것같이 보이니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삼가 했어야 합니다.
거짓은 무너질 때 여지없이 무너지고, 진실은 천지도 없앨 수 없는 것입니다. 교만이 많으면 사람을 잃고, 외식(外飾)이 많으면 진실을 잃습니다. 사람을 잃으면 세상을 버림이요, 진실을 잃으면 자기를 버리는 것과 마찬 가지입니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아직도 진실과 거짓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회복하면 자신이나 나라를 위해서 천만 다행으로 여겨지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2월 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