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여섯 단계
제가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한지 4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고 긴 세월동안 수행을 한다고 무진 애를 써 왔으나 아직도 진리와 합일되기란 요원한 것 같이 느껴지는 한심한 중생입니다. 그런데 우리 [덕화만발] 카페 <원산 나환정 한문공부방>에 ‘지공무사(至公無私)’라는 제목으로 원산 나환정 선생께서 <수행의 6단계>를 발표해 주셨습니다.
아직은 더 연마 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수행법을 연마하면 어쩌면 대각(大覺)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소개를 합니다. 무릇 진리를 행하여 깨침에 이르려는 분께서는 저와 함께 이 <수행의 여섯 단계>를 공부를 해 보시지요.
【지공무사(至公無私)
지공무사란 지극히 공변되어서 사사로움이 없다. 또는 공(公)에 이르러 내가 없다는 뜻입니다. 원불교에서는 진리의 상징으로 일원상(一圓相 : ○)을 모시고 있습니다. 원래 진리는 형상이 없어 어떤 형상으로도 나타낼 수 없지만, 억지로 나타내자면 ○이 진리 설명하기에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원(一圓 : ○)은 가득 찼다, 텅 비었다, 하나다, 돌고 돈다. 원만구족하다. 지공무사하다’ 등 많은 의미를 동시에 가진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특정 종교의 교리를 떠나 단순하게 한문 뜻으로 우리 수행의 끝이 ‘지공무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단계별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수행의 6단계>
제1단계 : 강재이뇌(降在爾腦)입니다.
신이 너의 뇌(腦)에 내려와 계시다는 뜻이지요. ‘강재이뇌’는 우리 민족의 3대 경전(天符經, 三一神誥, 參佺戒經) 중 하나인 ‘삼일신고’에 나와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신은 하늘에 있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 장차 온다.”가 아닌 우리와 가장 가까운 우리의 뇌에 이미 와 계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가르침이 가장 실감이 나고 가장 알기 쉽고 신과 우리의 거리를 가장 좁힌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단계 : 아자아자(我自我自)입니다.
‘아자아자’는 순수한 우리말로 어떤 단체가 힘을 내자는 뜻으로 구호를 외칠 때 쓰는 말인데, 저는 이것을 한문으로 생각해서 ‘나 我 부터 스스로 自’로 보고. ‘나부터, 나부터’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自’ 자를 가만히 보면 눈목 ‘目’에 삐침을 더하여 눈을 뜨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우리가 잠잘 때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내가 있고 우주가 있는 것입니다. 이 ‘自’는 ‘스스로 자’ 뜻도 있지만 ‘부터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我自’는 나부터 라는 뜻이 됩니다. 모든 수행이 남보다 하라고 하기 전에 나부터 먼저 해야 될 것입니다.
제3단계 : 개구리훈(開口利訓)입니다.
개구리훈은 입을 열어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로운 교훈’을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진리는 입을 통해서 전파됩니다. 부부간에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으면 배우자의 마음을 잘 알 수 없습니다. 입을 여는 것이 실천의 시작입니다. 다만 남에게 해로운 정보를 말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말빚을 질까 입을 열지 않으면 좋은 생각도 사라져 버립니다. 벼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 먼저 껍질이 생기고 나중에 속이 차서 열매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말을 먼저하고 행동으로 속을 채우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제4단계 : 낙원개척(樂園開拓)입니다.
인류가 누린 최초의 낙원은 에덴동산이라고 하지만, 낙원 생활의 기간이 너무 짧고 인류가 누린 고통의 세월은 너무 길어 다시 이 땅에 낙원을 재현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머릿속으로 또는 입으로는 낙원을 수없이 말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사고 없는 날을 찾을 수 없고, 눈만 뜨면 ‘빈곤, 질병, 무지, 죄악, 고독, 전쟁, 천재지변, 이상 기후’ 등으로 인해서 이 세상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지상낙원입니다. 척자(拓字)를 보면 손수 변에 돌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손으로 돌을 들어내고 길을 넓힌다는 뜻이 보입니다. 손으로 한다는 것은 행동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개척이라는 말자체가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5단계 : 원만구족(圓滿具足)입니다.
원만구족이라는 것은 완전하게 채워 조금도 부족함 없이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완전한 행복을 말하는 것이지요. ‘足’은 넉넉할 족도 되지만 발족도 됩니다. 완전한 만족은 생각[腦]만 하는 것도 아니요, 말[口]로만 하는 것도 아니요, 손[手]만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발[足]로 걸어 다니며 실천해야 완전한 만족이 온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래서 실천(實踐), 만족(滿足)에는 ‘발 足’이 들어갑니다.
제6단계 : 지공무사(至公無私)입니다.
수행의 마지막 단계는 오로지 공익에만 충실할 뿐 개인의 사사로움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하고 남에게 유익을 주었다 할지라도 나라는 생각이 남아있으면 지금까지 베풀었던 공덕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공을 남이 몰라주거나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원망심이 생기고, 이 원망심이 커지면 증오감으로 변하여 재앙을 부르는 무서운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자는 공덕을 베풀되 나라는 생각을 비우라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도 처음 대하는 공부법이라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욱 연마하여 제대로 발표를 하신다고 하니 그 기대가 여간 큰 것이 아닙니다. 무릇 사자나 범을 잡으러 나선 포수는 꿩이나 토끼를 보아도 함부로 총을 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짐승을 잡으려다가 큰 짐승을 놓칠까 저어함이지요.
그래서 큰 공부에 발심한 사람은 세간의 탐착(貪着)과 애욕(愛慾)을 능히 불고(不顧)하여야 그 목적을 이룰 것입니다. 성불에 이르는 수행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인이 실행할 수 없으면 대법(大法)은 아닐 것입니다. 큰 법은 제가 언제나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삼학(三學)이 가장 쉽고 빠른 최고의 수행법이 아닐 런지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2월 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