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역량을 동원해서 극복해야 할 비상 상황에서는 합심 협력이 최고의 덕목이다. 평소 국정과 정책에 대한 차이, 정파적 이해로 갈등한다 해도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치면 이 사회와 국가에 책임있는 모든 세력이 함께 머리를 맞대 지혜를 짜내고 공동 행동을 해야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같이 사회에 공포감을 확산시키고 시간을 다투는 문제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누구보다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은 특히 협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와 대조적으로 행동했다. 메르스 창궐에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시행령을 바로잡기 위한 국회법 개정을 저지하는 일에 집중했다. 야당을 공격하고 나아가 여당 지도부까지 궁지로 몰려고 했다. 메르스 사태가 악화되고 나서야 박 대통령은 긴급 회의를 주재하고 병원을 방문했지만, 여전히 메르스 사태 해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병원을 방문해서도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혼란을 초래한다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난하는 걸 잊지 않았다. 메르스 대책 논의를 위해 당·정·청 협의를 하자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제안도 거절한 채 메르스 비상 시기에 정치 갈등을 조장하는 데 앞장선 것이다. 정권 대 야당의 갈등뿐 아니라, 집권당과도 대립하고 심지어 지방정부와도 부딪치고 있다. 대통령이 메르스라는 하나의 전선에 매진해도 부족할 마당에 이런 분열적 행보를 보이고 있으니 시민들이 대통령과 정부를 믿고 따라갈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야가 초당 협력을 결의한 일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도부는 어제 국회에서 만나 메르스 확산을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고 공동 대응하기 위해 정쟁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양당 지도부는 정부가 지방정부, 교육청, 민간을 참여시켜 종합대책을 강구할 것도 촉구했다.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데 여야까지 싸운다면 메르스와의 싸움 역시 힘겨워질 수밖에 없다. 양당이 한목소리를 내고 함께 행동하기로 한다면 통합과 협력의 기운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 만연한 불안과 불신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부디 박 대통령도 초당 협력의 정신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여야 지도부와 만나 이 나라를 단결시키는 지도자로 거듭나 메르스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