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췌한 얼굴에 마스크를 쓴 박아무개(25)씨가 입을 떼자, 경기도 평택시 송탄보건소 공중보건의와 간호사들은 술렁였다. 박씨는 "새벽부터 오한이 나서 한 숨도 잘 수 없었다"면서 "출근했다가 고열 탓에 해열제를 먹은 뒤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밝혔다. 그의 체온은 37.8도였다. 메르스 의심 증상 발열 기준인 37.5도를 웃돌았다. 박씨는 간호사 A씨로부터 검체통을 받은 뒤 화장실로 향했다. A씨는 그와 관련된 정보를 전산시스템에 입력했다. 박씨가 돌아오자, A씨는 "일주일가량 뒤에 전화로 검사 결과를 알려줄 수 있다"면서 "자가격리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라고 말했다.
A씨는 "항상 마스크를 써야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2m 이내에 접촉하면 안 된다"면서 "비누 등을 같이 쓰지 말고, 외출도 하면 안 된다"고 전했다. 박씨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이날 송탄보건소 진료버스에 마련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진료소에 다녀간 47명 중에서 메르스로 의심되는 증상을 보이거나 메르스 확진·경유 병원에 들른 이는 8명이다. 보건소 쪽은 이들 8명에 대한 검체(검사대상 물질, 가래) 검사를 의뢰했다.
기자는 A씨에게 메르스 의심 환자를 접촉하면서 불안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솔직히 불안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보건소 직원들은 메르스를 막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메르스 의심 환자 방문... 술렁이는 보건소
송탄보건소는 평택보건소·안중보건지소와 함께, 가장 많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평택시의 최일선에서 메르스 방역 업무를 맡고 있다. 이곳은 메르스 진원지인 평택성모병원에서 불과 6.4km 떨어진 곳에 있다. 특히, 메르스 환자 경유 병원 가운데 한 곳인 365연합의원과의 거리는 불과 1.7km다.
송탄보건소는 지난 2일부터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다. 송탄보건소 직원 80여 명은 주말에도 나와 매일 자정까지 자택격리 대상자(자가격리 대상자)를 비롯한 감시 대상자 수백여 명에 대한 전화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 소속된 의과 공중보건의 5명도 돌아가면서 진료소에서 메르스 의심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취재진은 송탄보건소의 협조를 얻어, 진료소를 취재했다. 직원들과 똑같은 3M 마이크로가드 전신 방호복을 입었다. 고글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장갑을 꼈다. 공중보건의의 안내에 따라 취재를 시작한 지 10분이 지나자, 땀이 흐를 정도로 방호복 내부 온도가 올랐다. 갑갑함을 느꼈다. 마스크 탓에 호흡하는 데 불편함을 느꼈다.
이날 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감기 증상을 보여 되돌아갔지만, 메르스 의심 증상이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5월 말 평택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자가격리 대상자 명단에 오른 김아무개(50)씨는 보건소 앰뷸런스를 이용해 진료소에서 진료를 받았다. 김씨는 "미열이 있는지 머리가 띵하고 기침을 한다"고 말하자, 공중보건의와 간호사들은 김씨의 검체 검사를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한 여성은 어린 자녀의 고열을 걱정하면서 진료소를 찾았다. 모자는 메르스 환자 경유 병원을 방문했지만, 메르스 환자와 같은 날 병원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중보건의 B씨는 "아이에게 고열은 위험하니, 소아과로 가보라"며 돌려보냈다.
B씨는 기자에게 "검체 검사 의뢰가 폭주하고 있다. 현재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 이상 걸린다"면서 "이러한 여건 때문에 진료소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의 검체 검사를 의뢰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식자재 관련 회사에 다니는 전성훈(45)씨도 간단한 진료만 받고 발길을 돌렸다. "오전에 출근한 뒤 회사에서 체온을 쟀더니 미열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면서 "회사에서 '보건소에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다행히 여름철 자연스러운 체온 상승 말고는 메르스 의심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평택 전체가 메르스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다"면 씁쓸해했다.
"부실한 의료진 보호... 그래도 최선 다하고 있다"
오후 6시 진료가 모두 끝났다. 공중보건의 B씨는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고 있는데, 솔직히 무섭고 불안하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소독을 위해 에어워셔(공기세정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당국에 요청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설치되지 않았다"면서 "메르스 의심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에 대한 보호가 부실하다"고 덧붙였다.
보건소 직원들은 진료소 바깥에서 방호복을 벗었다. B씨는 "에어워셔가 없기 때문에 방호복을 벗는 과정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진료소에 있는 의료진 보호 기구는 손소독기, 손세정제, 소독용 알코올이 전부였다. 기존 진료버스를 이용한 탓에 주요 진료 기기는 비닐로 덮여있었고 진료할 수 있는 공간은 비좁았다.
송탄보건소 공중보건의 임채홍(34)씨는 서울 상암동 집에 임신한 아내를 홀로 둔 채, 한 보건지소 옆 창고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아내가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아내와 떨어져서 지낼 생각"이라고 전했다.
현재 공중보건의·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소 직원들은 '공공의 적'이다. 당국의 메르스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보건소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소에는 하루 종일 전화통이 울렸다. 송미숙 송탄보건소 건강증진계장은 "걸려오는 전화의 절반은 욕설이 섞인 전화다. 보건당국의 잘못을 두고 저희를 싸잡아 비판하며 죄인 취급을 한다"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위장병에 걸리거나 우는 직원도 있다, 임신한 직원한테는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보건소 직원들은 당국의 초기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한 간호사는 "메르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제대로 내려오지 않았다"면서 "관련 정보를 TV를 보고 안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 공중보건의는 "보건소에서 처음부터 감염내과 전문의와 연계해 대응을 했다면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현재 그러한 시스템은 갖춰지지 않았고, 메르스 대응과 관련한 가이드라인도 부실하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안희정 충청남도지사가 메르스 방역 최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인에 대한 응원을 호소한 뒤, 의료인을 향한 격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중보건의 임채홍씨는 "지금은 책임소재를 가리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최일선에 일하고 있는 의료인들에 대한 격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호사 A씨는 "주중주말과 밤낮 없이 일하고 있다"면서 "불안하지만 내가 빠지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격려를 해주시면 힘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