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인이 구하는 바
《채근담(採根談)》68장에「어득수서 이상망호수 조래풍비 이부지유풍(漁得水逝 而相亡乎水 鳥來風飛 而不知有豊)」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헤엄치지만 물이 있음을 잊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지만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사물에 얽매이는 일이 없을 것이며, 하늘의 오묘한 작용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사람은 세속의 속박을 떨쳐 버리지 못하여 갖은 얽매임과 고통스러움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속박을 벗어나야만 하늘이 우리에게 준 행복한 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어느 시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느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났고 세월과 함께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무런 고통이나 문제가 없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중생의 삶이란 많은 문제와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답답하고 괴로운 일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이란 고통 많은 중생계에 살면서도 그 고통에 빠져 살지 않으려고 공을 들이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바른 자세는 나의 고통을 누군가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말고 진정 내 자신의 문제는 내 자신이 풀어갈 주체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어서 어떤 절대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은 만큼 받는 철저한 인과를 인식하는 것만이 자기의 근원적인 주체인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여기서 깨달음은 근원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진리는 부처님과 같이 특정인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경계가 아닙니다.
우리 불자들의 원력(願力) 또한 불법의 실현에 있습니다. 이 법은 부처님이라고 해서 더 한 것이 없고 중생이라 해서 못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어찌 우리가 부처님과 다르겠습니까? 부처님은 진리를 보시고 진리 자체가 되어 진리 그대로 사셔서 부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진리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진리와 합일하지 못해 고해에서 헤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생은 푸른 하늘 가운데서 태양을 보지 못하고 어둠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같은 허공 속에 살아도 부처님은 자재(自在)한 삶을 누리시고, 중생들은 속박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도 불법을 행해서 깨달음의 문에 들어와야 합니다. 자성의 청정(自性淸淨)을 깨달으면 천지만물이 나와 한 몸이요, 미혹(迷惑)하면 중생계입니다. 스스로 망념(妄念)의 변화에 의하여 인간세계, 천상세계, 수라세계, 축생세계, 아귀세계, 지옥세계가 일어나고, 망념을 여의고 본래 청정한 마음이 드러나면 바로 생사를 해탈한 진리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행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기도(祈禱)입니다.
기도는 타력수행(他力修行)으로 진리의 힘에 의지해 소망을 달성하는 방법입니다. 수행은 마음을 밝혀서 거울같이 맑은 심성의 본체를 깨달아 부처님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마음을 넓게 열면 마음 밖에 따로 경계가 있을 수 없고, 경계를 널리 펴면 또 경계 밖에 따로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고 받아들여 마음을 돌이키면 큰 변화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가피력(加被力)입니다.
둘째, 참선(參禪)입니다.
참선은 자력수행(自力修行)으로 스스로 수행을 통하여 구경의 목적인 불과(佛果)를 얻는 것입니다. 참선은 별스러운 게 아닙니다. 하나를 보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을 집중하면 마음이 밝아 오고 정신이 맑아집니다. 평소 우리 마음은 탐(貪) 진(瞋) 치(痴) 삼독(三毒)의 그림자가 가려져 하나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맑으면 마치 만상이 거울에 나타나는 그대로 순간순간 비추어 보이듯이 검은 것은 검게 하얀 것은 하얗게 정확하게 비춰줍니다.
셋째, 염불(念佛)입니다.
염불은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공덕과 지혜, 원력을 절대적으로 믿는 타력수행입니다. 일심으로 염불하면 일념이 되고 다시 무아지경에 이르러 마침내는 일체 경계가 끊어진 경지에 이르러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를 염(念)할 때는 탐욕에 얽히면 안 됩니다. 그 마음을 정직하게 하여 여래의 모든 일을 생각하면 여래의 뜻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기도와 참선, 염불을 통해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즐거워하면 몸이 편하고 또 마음이 편해집니다. 따라서 그 편한 몸으로써 그 마음을 한곳에 머물게 하면 몸은 그 모든 장애가 없이 법의 흐름에 들어서 열반(涅槃)에 이르지 아니 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을 생각하고 탐 진 치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을 바르게 하면 모든 괴로움이 소멸되고 마침내 열반에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망념을 여의고 청정한 마음 드러나는 것이 곧 생사해탈이고 열반입니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어느 시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사느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났고, 세월과 함께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무런 고통이나 문제가 없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중생의 삶이란 많은 문제와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답답하고 괴로운 일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이란 고통 많은 중생계에 살면서도 그 고통에 빠져 살지 않으려고 공을 들이는 것입니다.
수도 인이 구하는 바는,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자는 것이며,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 복의 이치를 알아서 죄 복을 임의로 하자는 것이지요. 수도인은 도를 닦는 사람입니다. 우리 도를 닦아 ‘마음자유, 생사초월, 죄복임의’를 자유로 하는 경지에 이르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2월 1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