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이네] '장발장법' 발의한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단순 벌금 70만 원을 낼 형편이 못 돼서 전국 지명수배자가 될 뻔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저에게 벌금을 빌려주셔서, 노역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서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울 중구 '장발장은행' 앞으로 온 편지 내용이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한 사람이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자 직접 펜을 든 것이다.
지난 2월 25일 인권연대가 만든 장발장은행은 벌금을 낸 돈이 없어 노역장에서 몸으로 때우려는 환형유치자들을 돕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미성년자 등에게 무담보·무이자로 최대 300만 원을 빌려준다. 그동안 1035명의 개인·기관·단체가 장발장은행에 3억3011만3941원을 보내왔고, 155명이 9차례에 걸쳐 2억8608만8400원을 대출받았다.
죄의 무게보다 무거운 형벌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그만큼 늘었다. 3만 원 상당의 비타민제를 훔친 혐의 등으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은 정아무개씨는 장발장은행의 도움 덕에 노역형을 면했다. 정씨에게는 투병 중인 딸이 있다. 무면허 운전으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은 이집트 국적의 A씨도 대출받은 돈으로 벌금을 내 출산을 앞둔 한국인
그러나 장발장은행만으로 이들을 구제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벌금을 낼 돈이 없어 노역형을 택한 환형유치자는 지난 한 해 4만2871명에 달했다. 여태껏 155명이 대출받은 사실을 고려하면 장발장은행이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일명 '장발장법'을 발의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홍 의원은 입법을 통해 이 시대의 '장발장'들을 근본적으로 돕는다는 취지에서 형법일부개정안(장발장법)을 지난 8일 발표했다.
장발장법은 벌금형에도 집행유예를 인정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현행 형법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할 경우'에만 한해 집행유예를 인정하는데, 그 범위를 벌금형으로까지 확장하자는 것이다.
홍 의원은 "자유형(징역, 금고 등)의 집행유예는 인정하면서 경미한 형벌인 벌금형의 집행유예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형법 불평등"이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가벼운 범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가 더 무거운 범죄를 선고받은 자보다 오히려 더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라며 "벌금형의 공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벌금의 납부 기한을 연장하거나 분할 납부가 가능토록 하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됐다. 앞서 검찰이 내부 규칙을 통해 벌금형의 분납과 납부 기한 연장이 가능토록 했지만, 법률이 아닌만큼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지적이다. 홍 의원의 법안이 통과되면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 한해 벌금 분할 납부와 기한 연장이 가능해진다. 법원과 검사도 이러한 내용을 의무적으로 피고인에게 사전 고지해야 한다.
공동발의자 41명... 법사위 통과 가능할까 벌금형 개혁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은 이번에 처음은 아니다. 19대 국회에서 이한성 새누리당·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낸 법안 등 총 5건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 회부됐지만 후속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장발장은행 대출심사위원)은 "그동안 여야 막론하고 관련 법안을 내놨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한 번도 벌금형 문제 개선 방안을 두고 진지한 논의를 진행해본 적이 없다"라며 "홍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계기로 국회의원들이 형편이 어려운 환형유치자들의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장발장법에는 총 41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홍 의원과 같은 당인 새정치연합 의원들을 비롯해 길정우·박덕흠·조원진 등 새누리당 의원도 함께했다. 홍 의원은 "법안을 공동으로 발의한 의원들이 다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법안의 법사위 통과 가능성은 긍정적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