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보건소 출동대기 중인 앰뷸런스
“6월 들어 한 번도 집에 못 들어갔어요.” 서울 동작보건소 강문종 감염병관리팀장은 지난달 30일 이후 ‘퇴근’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일한다고 했다. 직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동작구는 지난달 22일 ‘동작구 메르스방역대책본부’를 꾸렸다. 그달 28일 관내에 첫 ‘자가 격리자’가 생기면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사태가 장기화될 줄은 몰랐다. 늘어나는 자가 격리자에 대책본부는 24시간 근무체제로 전환됐다.
첫 출동은 지난달 28일이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전화가 왔다. 강 팀장은 검체 대상자 A씨(30·여)에 대한 정보를 듣자마자 직원 1명과 함께 곧바로 출동했다. A씨는 1번 확진환자 진료를 맡았던 간호사였다. 주택가 골목길 안쪽에 A씨의 집이 있었다. A씨 집으로 진입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강 팀장은 앰뷸런스를 멀찌감치 세우도록 지시했다. A씨에 대한 배려였다.
“앰뷸런스가 보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지켜보게 돼요. 개인이 노출되면 그만큼 동네에 위화감이 조성될 테고 당사자인 A씨도 아직 확진 판정이 나오기도 전에 ‘메르스 환자’로 낙인찍힐 위험이 있는 거죠.”
강 팀장은 A씨가 사는 건물 안으로 들어선 뒤 장갑, 마스크 등 최소한의 방호 장비만 착용했다. 원칙대로 방호복을 다 갖춰야 했지만 그랬다간 순식간에 동네에 소문이 날 터였다. 강 팀장은 A씨 집 앞에 길이 10㎝정도의 투명한 플라스틱 원통 모양의 객담(가래) 채취 용기 4개를 놓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객담을 용기에 뱉어 박스에 넣어 문 앞에 두면 들어가서 회수하겠다고 전했다. A씨는 간호사라 혼자서 객담을 채취할 수 있었다.
이날 함께했던 직원은 A씨로부터 채취한 객담을 들고 충북 오송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원까지 다녀왔다. 강 팀장은 이날 처음 밤을 새웠다. 대책본부가 꾸려졌을 때만 하더라도 상주 직원은 30명 정도였다. 그러나 이날 이후 메르스가 본격화되면서 직원은 100여명으로 늘었다. 백업요원도 50여명 충원됐다. 메르스와의 사투가 시작됐다.
처음엔 지침이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니라 ‘하면서’ 배웠다. 메르스 의심 환자와의 접촉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그분들 만나는 게 우리 일인데 우리가 노출되면 그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우리 스스로 개인수칙을 지키며 그 안에서 방법들을 터득해갔죠.” 강 팀장은 “앰뷸런스를 환자 집으로부터 멀리 대고 검체 받는 방법 등 이런 것들은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에서 마련한 방침들”이라고 했다.
지난달 31일 70대 여성 B씨 집에 갈 땐 특히 더 조심했다. B씨는 본부 차원에서 중점 관리하고 있던 환자였다. 나이도 나이지만 지병이 있어서 특히 더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B씨 집은 작은 아파트라 경비원들이 주민 이름까지 다 알 정도였다. 강 팀장은 이날 한 가지 방침을 더 정했다. 절대 환자가 거주하는 층 엘리베이터는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강 팀장은 B씨 집을 이후 두 번 더 찾아갔다. 그때마다 이 수칙을 지켰다.
18일 오후 기준으로 동작구 내 메르스 의심 환자는 54명이다. 이 중 36명은 능동 감시자, 19명은 자가 격리자다. 지난 14일 35번 환자와 함께 있었던 30여명의 자가 격리가 해제되면서 조금 감소한 수치다.
강 팀장 등 대책본부 직원들은 하루 두 번씩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발열이나 이상징후 등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늦은밤에도 발열을 호소하며 병원에 이동시켜 달라는 환자가 많아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30대 여성 C씨는 지난 15일 오후 9시30분쯤 발열로 병원에 옮겨졌다. 오전까지 열이 없었지만 저녁이 되면서 열이 올랐다. 대책본부는 오후 8시쯤 시행한 모니터링 전화로 이 사실을 알게 된 뒤 빠르게 조치할 수 있었다. 강 팀장은 “이 경우는 조금 특별했던 케이스로 일반적으로 환자들이 발열 증세를 보인다 해도 바로 병원으로 이동할 순 없다”고 했다. 그는 “병원과 조율해야 한다. 처음엔 환자를 받지 않겠다는 병원이 많아 힘든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책본부가 만들어진 지 28일이 지났다. 18일에도 여전히 분주했다. 메르스 상담소에 비치된 차트는 그동안 출입자 명단과 그들의 체온 수치로 빼곡했다. 이날도 오후 7시까지 13명이 상담소를 찾았다. 이들은 상담 데스크 앞에 설치된 두꺼운 비닐 투명막을 사이에 두고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하다 침이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8일 이후부터 자가 격리자 생필품 지원도 하고 있다. 이전엔 따로 나온 지시가 없어 사비를 털어 환자가 요구하는 대로 사다주곤 했다. 강 팀장은 “한번은 환자가 발사믹 식초, 슬라이스 아몬드 등을 사달라고 해서 사다줬더니 샐러드 재료였다”며 웃었다. 그는 “그때는 돈이고 뭐고 환자들을 집에 있게 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며 “집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게 먼저였다”고 했다. 현재는 1인당 10만원 한도 내에서 정해진 물품을 일괄적으로 주고 있다.
이들을 버티게 하는 건 간간이 전해지는 자가 격리자 소식이다. 강 팀장은 “며칠 전 B씨가 격리가 끝났다고 고맙다며 연락이 왔어요. 외롭고 적적했는데 많은 힘이 됐다고 하더라”며 “이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