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뺏으려는 흰꼬리수리떼 물리치고 유유히 둥지로
» 수면에 오른 큰입배스에 전광석화처럼 다가가 낚아채는 참수리의 모습.
팔당댐 인근에 겨울마다 어린 참수리가 출몰한 지는 10년쯤 됐다. 그런데 다 자란 참수리 2마리와 어린 참수리 1마리가 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참수리가 야생에서 먹이 사냥을 하는 모습을 포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결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두 달여간의 기다림은 고통스러웠다.
» 나무에 앉아있는 참수리. 커다란 노란 부리와 견장처럼 흰 어깨깃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12월28일 관찰을 시작했다. 참수리의 활동영역은 팔당댐과 미사대교 사이 약 8㎞ 구간이다. 이곳은 팔당댐에서 매일 방류하는 물로 여울이 형성돼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강바닥에 돌이 많아 물 위로 삐죽 튀어나온 바위들은 새들이 먹이를 먹고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물고기가 많아 잠수성 오리와 큰고니도 몰려든다. 맹금류의 먹이터로는 최적의 장소다.
참수리, 특히 어른 참수리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보기 힘든 새다. 워낙 세계적으로 희귀한 새인데다 행동이 조심스럽고 예민해 좀처럼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냥은 하루에 한 번, 그때를 놓치면 온종일 얼굴 보기가 어렵다. 맹금류는 배가 부르면 움직이지 않는다.
» 한강의 먹이를 노리기 위해 참수리가 소나무에 내려앉고 있다.
관찰을 거듭하면서 참수리의 동선이 윤곽을 드러냈다. 해뜨기 직전 참수리는 검단산에 나타난다. 아직 어슴푸레한 강가의 높은 소나무에 앉아 강가를 살핀다.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병들어 사냥하기 쉬운 오리가 있는지 지켜본다. 앞을 향해 나 있는 날카로운 두 눈 앞으로는 부리까지 얕은 홈이 나 있어 조준경을 단 소총처럼 먹이를 정확히 겨냥한다.
주 먹이는 큰입배스와 누치 같은 물고기다. 사냥을 마친 참수리는 팔당댐에서 왼쪽으로 틀어 예봉산의 잠자리로 돌아간다. 팔당댐 아래 팔당터널이 건너다보이는 암초 지대에서 참수리의 사냥 장면을 노렸다.
참수리를 한번이라도 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직접 참수리를 만난 것은 열번 정도다. 거리도 가까워야 700m, 멀면 1000m 이상인데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사냥을 예측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물 위에 낀 엷은 안개도 촬영을 방해했다. 종일 추위와 싸우며 참수리를 만나지 못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몸도 지쳐갔다. 역부족인 600㎜ 망원렌즈를 800㎜ 초망원렌즈로 바꿨다.
» 사냥에 나선 참수리. 이런 모습을 볼 기회 자체가 흔치 않다.
관찰 70일째인 3월7일 아침 7시40분 참수리가 모습을 나타냈다. 소나무에 앉아 강물을 이리저리 보며 사냥감을 찾았다.
아침 8시 반께 사냥 목표를 발견했다. 나무 위에서 육중한 몸을 강으로 날려 쏜살같이 활공한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거리는 300m로 가까운 편이고 결정적인 사냥 장면을 눈앞에서 연출한다.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 참수리의 큰입배스 사냥 장면
» 포착한 사냥감을 향해 일직선으로 활공해 날아드는 참수리.
» 목표는 물위로 오른 커다란 큰입배스.
» 큰입배스를 막 움켜쥐려는 찰라.
» 먹이를 움켜쥐었다.
» 발로 물고기를 쥔 채 있는 힘을 다해 하늘로 솟구친다.
» 물고기를 쥔 채 먹기 편한 암초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참수리가 물에서 커다란 배스 한마리를 낚아챘다. 마치 목표를 향해 발사한 미사일처럼 포착한 사냥감을 향해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날아가 사냥에 성공한 것이다. 다른 맹금류에서 볼 수 없는 치밀하고 완벽한 사냥술이다.
그러나 필자만 이 순간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흰꼬리수리가 하나둘 몰려들어 먹이를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먹이쟁탈전이 벌어졌다.
이런 모습은 맹금류 무리에서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참수리는 여섯마리나 되는 흰꼬리수리로부터 먹이를 지켜냈다. 몇 달을 고대하던 장면이 한순간에 다 벌어졌다. 쌓인 피로가 금세 사라졌다.
■ 참수리와 흰꼬리수리의 먹이 쟁탈전
» 암초에서 먹이를 먹으려고 하는데 어느새 알았는지 흰꼬리수리가 다가온다.
» 물고기는 하나인데 흰꼬리수리는 셋이 모여 먹이에 탐을 낸다.
» 참수리가 먹이를 물고 다른 곳으로 가려 하자 흰꼬리수리가 아예 몸 위에 올라탄다.
» 참수리가 물속에 완전히 빠졌다.
» 다시 물위에 나온 참수리가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 완강하게 저항한다.
» 남은 먹이를 날면서 먹고 있는 참수리.
먼발치에서 지켜본 참수리의 사냥은 실패로 돌아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인내심 있게 기다리다 결정적인 순간에 정확하게 사냥을 끝낸다.
먹이를 잡는 주무기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리고 주름이 잡혀 미끄러지지 않는 발이다. 진한 노란색의 크고 두툼하며 끝이 예리하게 구부러진 부리도 다른 새들과 다른 특징이다.
얼굴보다 부리가 더 큰 느낌마저 준다. 오리를 사냥하면 바위에 앉아 부리로 털을 모조리 뽑은 뒤 물에 헹구어 뜯어먹는다.
또 먹이를 다 먹으면 부리를 씻은 뒤 발에 붙은 찌꺼기를 꼼꼼하게 떼어낸다. 사냥은 대개 아침 8시 반쯤 많이 했지만 수온이 낮아 물고기 움직임이 둔하면 오후 3시께 하기도 했다.
3월11일 다시 팔당에 갔지만 참수리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8일 500마리까지 모였던 큰고니도 모두 사라졌다. 경칩이면 겨울철새는 모두 북방의 번식지로 떠난다.
팔당의 참수리도 러시아 연해주 어딘가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다시 보려면 11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환경의 건강을 상징하는 최상위 포식자가 언제까지 이곳을 찾아올까.
■ 참수리란 어떤 새?
동북아 해안에 서식하는 수리과의 대형 맹금류로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수리이다. 암컷의 몸무게는 6~10㎏으로 수컷 5~7㎏보다 무겁다.
암컷의 몸길이는 평균 100㎝이고 날개폭은 2~2.2m에 이른다. 커다란 부리가 두드러지며 길이가 11.7㎝나 된다. 미끄러운 물고기를 놓치지 않도록 발바닥에 파동 무늬가 나 있다.
참수리는 동북아의 캄차카 반도와 오호츠크해 해안, 아무르강 하류 등에서 번식하며 한국, 일본 홋카이도, 쿠릴열도 등에서 겨울을 난다. 번식기에 캄차카에 700마리가 큰 무리를 지은 기록도 있다.
분포로 보아 아북극 지역에서 진화해 빙하기 때 추위를 피해 동아시아를 피난처 삼아 살아남은 빙하기 유존종으로 추정된다.
전세계에 5000마리 정도가 있으며 감소 추세여서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취약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1973년에 천연기념물 제243호로, 2012년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한 법정 보호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