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에 사는 60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20일 오후 숨졌다.
[서울=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전북도 메르스 방역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6시 10분 격리치료를 받던 112번 환자 김모(63)씨가 숨졌다고 밝혔다.
김씨는 허혈성 심장질환과 당뇨를 앓고 있었다.
이로써 국내 메르스 사망자는 25명으로 늘었다. 메르스 확진자 166명 기준 치명률도 14.5%에서 15%로 상승했다.
김씨는 순창 70대에 이어 전북지역에서 메르스로 숨진 두 번째 환자이다.
그는 지난달 27일 아내의 암 치료차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가 30일 오전부터 오한과 발열 증상을 보여 전주 예수병원을 찾았다.
이튿날 김씨는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메르스 14번 환자와 접촉했다는 통보를 받고 곧바로 보건소에 신고한 뒤 자가격리됐다.
김씨는 이후 실시한 1, 2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 지난 2일부터 자가격리에서 능동감시 대상으로 완화됐다.
사스·신종플루 비교해보니… 메르스 '한달 성적표'는 낙제점
국내 메르스 발병 1개월째인 20일, 과거 노무현·이명박 정부와 비교하면 너무나 뒤떨어진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첫 한 달은 사망자 없었는데도…
2009년, 인플루엔자바이러스 A형 H1N1 아종의 변종인 일명 '신종플루 대유행'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멕시코에서 처음 발병한 이래 1년여 만에 160만명 이상이 신종플루에 감염됐고 1만 9000여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급기야 2009년 6월 세계보건기구(WHO)는 1968년 이후 41년 만에 처음으로 신종플루의 경보단계를 '대유행'을 의미하는 6단계로 선언하기도 했다.
신종플루가 한국에 상륙한 2009년 5월 첫 한 달 동안 사망자는 없었지만, 41명이 신종플루에 감염됐다.
하지만 신종플루가 계속 퍼지면서 1년 후 국내 감염자는 76만여명을 넘겼고, 이 가운데 270명이 숨졌다.
보건당국이 초기 전염병 대응에 어느 정도 성공하더라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하지만 20일로 한 달째를 맞은 메르스 감염자는 신종플루 사태의 4배나 높은 166명이고 사망자도 24명이나 된다. 또 16명은 인공호흡기나 에크모를 장착한 채 사투를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신종플루 대유행과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신종플루의 치사율(0.07%)에 비해 현재 국내 메르스 치사율(14.5%)이 훨씬 높은만큼, 메르스 사태가 더 큰 희생을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조심스레 제기되는 대목이다.
◇WHO 모범방역국 꼽힌 2003년 사스 '철통방어'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3년 당시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사스·SARS) 공포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사스로 인해 1년만에 전 세계에서 84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해 800여명이 숨졌다.
특히 한국은 중국 바로 옆에 있는데다 인적·경제적 교류가 활발해 대규모 사스 발병은 시간 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내 사스 환자는 겨우 3명, 그나마도 단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완치됐다.
똑같은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완전히 다른 양상이 나온 이유는 정부 초기대응의 차이에 있다.
2003년 사스 환자가 급증하자 고건 전 국무총리는 국내 환자가 발생하기 전부터 종합상황실을 설치하고 긴급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지난 6일에야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의 주최로 메르스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첫 환자가 발생한 지 2주 후, 이미 확진 환자는 50명이나 발생했고 5명이 숨진 뒤였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첫 환자가 발생한 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의심환자도 10일간 강제 격리할 수밖에 없다"며 협조를 구했다.
이후 114일의 비상방역 기간 내내 전국 242개 보건소가 24시간 가동되며 사스 위험지역에서 입국한 23만여명 전원에 전화 추적 조사를 벌였고, 공항과 항구 등을 이용한 약 90만명에 대해 검역을 벌였다.
불과 3명의 환자가 발생했지만 접촉자 2200여명이 자택 격리됐고, 환자와 같은 비행기에 탄 모든 탑승객을 상대로 추적조사가 진행됐다.
사스를 철통방어한 참여정부는 그 성과를 바탕으로 2004년 질병관리본부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늦장·비밀주의 '아몰랑' 메르스 대처
2009년 신종플루 당시에도 이명박 정부 역시 국내 신종플루 추정 환자가 발생한 다음 날 곧바로 중앙인플루엔자 대책본부를 꾸렸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메르스 최초 환자에게 확진 판정까지 내려진 다음에야 질병관리본부장을 사령탑으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뒤늦게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을 거쳐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대책본부를 맡겼다.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 기구가 늦게 꾸려졌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일까. 이후 정부는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민관합동종합대응 TF', '메르스 관련 긴급대책반', '중앙안전관리위원회',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등 온갖 메르스 관련 기구가 난립했다.
지난 9일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메르스 즉각대응팀'을 꾸리고 폐렴 환자 전수조사로 115번(77·여) 환자를 찾아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망신살만 샀다.
무엇보다도 큰 차이는 현 정부와 보건당국의 '비밀주의'에 있다.
사스와 신종플루 사태 당시 모두 환자 발생 병원의 실명을 즉각 공개했지만, 현 정부는 사회 혼란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병원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직접 환자를 만나는 의료진조차 메르스 환자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다가 지난 2일에야 '확진 환자 조회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지난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르스 관련 병원 명단을 공개하라"고 촉구하며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사흘 뒤 부랴부랴 병원 명단을 공개했지만, 그마저도 오류투성이어서 3시간여 만에 수정하는 촌극을 벌였다.
◇朴 "사스와 메르스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서 더 문제!
이로 인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자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은 자리에서 발끈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일각에서는 사스 대응하고 비교도 하지만, 사스의 경우 중국과 동남아에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질병 유입을 막아내는 것이었는데 메르스의 경우는 내국인에 의해 질병이 유입된 후 의료기관 내 접촉을 거쳐 감염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양상이 사스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참여정부를 거론하며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사스가 처음 발병한 건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로부터 불과 5개월만인 2003년 4월 '내국인에 의해 질병이 유입'됐다.
반면 메르스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201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로, 명칭이 발표된 것도 2013년 5월로 전 세계에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질병'이었다.
사스 사태보다 메르스 사태의 상황이 더 심각한데도 오히려 초동대응에 실패해 국내 전파까지 이뤄졌다고 자인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방역 성적표가 '사망 제로'로 사스를 막아낸 참여정부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신종플루 성적표에 비교해봐도 낙제 수준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중동 외교' 때문에 메르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의 중동 순방 당시 방문한 나라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공교롭게도 이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당시 각각 메르스 감염·사망자 1, 2위 국가였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변혜진 기획실장은 "사스 사태 당시 국내 환자가 발생하기 전부터 전국 병·의원에 사스 관련 정보가 배포됐지만, 메르스 사태에는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어느 복지부 공무원이 박 대통령이 취업하러 떠나라는 중동에서 전염병이 유행한다는 얘기를 꺼낼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