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일본 산업혁명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반영한다는데 사실상 합의했다.
양국은 21일 도쿄에서 열린 외교장관 회담에서 세계유산 등재 신청건과 관련, "세계유산위원회의 책임 있는 위원국으로서 신청된 안건이 원만한 대화를 통해서 등재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간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국 외교부가 밝혔다. 이와 관련,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의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타결하자는 공통인식을 갖고 이 문제를 긴밀히 협의키로 했다"며 "가까운 시일내 양국 대표간 협의가 있으면 세부 내용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5∼6월 진행된 일본과의 2차례 양자협의 때 일본 산업시설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문에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적시하고, 강제징용이 이뤄진 시설에 표지판 등을 설치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알릴 것을 요구해왔다. 7월 초 일본 산업혁명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독일 본)에 앞서 양측은 이 같은 한국의 요구를 놓고 최종 합의 도출을 모색하게 됐다.
지난달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일본 규슈(九州) 지역을 중심으로 한 8개 현에 걸친 총 23개 산업 시설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유네스코에 권고했다. 일본 정부가 추천한 이들 23개 시설에는 나가사키(長崎) 조선소,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탄광 등 조선인 수만 명이 강제노동한 현장 7곳이 포함됐다.
다만 두 장관은 최대 쟁점 현안인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돌파구를 만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군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고만 밝혔다.또 회담에서 윤 장관은 전후 70주년 일본 총리 담화에 "역대 내각 담화의 역사인식이 분명히 표명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일본의 집단 자위권 법제화에 대해 윤 장관은 "평화헌법의 정신을 견지하는 가운데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기시다 외무상은 "한국 및 제3국의 주권을 존중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두 장관은 한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키로 했다. 더불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같이하면서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 개최를 검토키로 했다.
윤 장관은 기시다 외무상에게 금년 말 이전 방한할 것을 초청했고 기시다 외무상은 이를 수락했다고 전했다. 다만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두 장관은 '여건이 조성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확인하는데 그쳤고, 한국이 의장국인 올해 한중일 정상회담은 '연내 가장 빠른 편리한 시기'에 열리도록 노력한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기시다 외무상은 한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 해제, 한국인 절도범이 한국으로 반입한 쓰시마(對馬) 불상의 반환 등을 요구했다.
윤 장관은 "회담 2시간, 만찬 1시간 30분 등 3시간여에 걸쳐 상호 관심사에 대해 우호적이고 허심탄회하고 건설적인 논의를 했다"고 회담 분위기를 소개했다. 그는 이어 한일 정상이 22일 도쿄와 서울에서 열리는 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교차 참석키로 한데 대해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양국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는데 (기시다 외무상과)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장관의 방일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5월 당시 김성환 장관이 한중일 정상회담 수행차 방문한 이후 4년여 만에 처음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이번으로 6번째이지만 다른 다자회의를 계기로 하지 않는 순수 양자 외교장관 회담은 양국 현 정부 출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윤 장관은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4월 일본 방문 예정이었지만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외무상이 그 직전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함에 따라 방문 일정을 취소했다.
윤 장관은 2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예방하고, 당일 오후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리는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한다. 같은 날 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와도 면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