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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멀고, 법도 멀었다.
문화

밥도 멀고, 법도 멀었다.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5/06/22 17:50
밥도 멀고, 법도 멀었다, 소주병 몇개 남기고 떠난 연극배우
연극배우 김운하(본명 김창규·40)씨

연극배우 김운하(본명 김창규·40)씨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 평 반(4.6㎡) 공간은 작은 침대 하나 놓고 나니 문을 열기도 비좁았다. 극심한 생활고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궁핍한 처지였음은 분명해 보였다. 김씨는 별다른 외상이 없었다. 휴대전화도 침대 위에 그냥 놓여 있었다.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이 본 김씨의 마지막 모습이다.

 

고시원 폐회로텔레비전엔 15일 새벽 2시께 방에 들어간 뒤 닷새간 김씨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다. 검시관은 ‘내재적 지병’ 탓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고, 알코올성 간질환, 신부전, 고혈압 등을 앓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경찰은 타살 혐의가 없다고 결론냈다.

 

김씨는 일단 무연고 주검으로 처리돼 강북구 미아동 서울좋은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그의 아버지는 1996년 세상을 떴다. 3살 때 헤어진 생모는 서류상 살아 있지만 거주지엔 없었다.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한달 뒤 관할 구청에서 화장한다.

 

서울 성북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연극계 후배들이 모였다. 십시일반으로 추렴해 영안실을 꾸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나온 그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좋은 배우’라는 평을 받았다. 유작은 지난 4월 김수정 연출의 연극 <인간동물원초>였다. 2015서울연극제 ‘미래야솟아라’ 부문에서 연출상을 받은 이 작품에서 감옥의 방장 역을 맡았다. 심사위원장이었던 김진만 극단 앙상블 대표는 “방장으로서 감옥 안의 약육강식이라는 권력관계의 중심을 잘 잡아준, 선이 굵은 배우였다. 곧 두각을 나타낼 배우로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연극인들은 무력감에 회한과 울분을 쏟아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더 답답하다. 대한민국, 연극판, 나의 집에서조차 이렇게 초라하기 위해 그리도 힘겹게 달려왔단 말인가.” 공재민 서울연극협회 사무처장의 반응이다.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복지법도 김씨에겐 저 멀리에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를 겪다 사망한 뒤 2012년 제정된 법이다. 하지만 아직 사각지대가 많다는 평가다. 극단 노을 대표인 오세곤 순천향대 교수는 “연극인의 경우 3년에 세 작품 이상 활동 증명을 해야 하고, 긴급상황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미리 계획된 사업이 아니면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긴급복지는 당장 병들고 굶어죽게 된 이를 돕자는 것인데, 이참에 다시 사각지대를 없애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긴급복지 사업의 문제점으로 기준 설계 오류, 오락가락하는 기준, 긴 심사기간, 전문성 없는 심사 과정 등을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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