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한겨레>가 입수한 대한감염학회 내부 회람용 전자우편 내용을 보면, 이 학회 임원은 “우리가 서둘러 논문을 내지 않으면 다른 나라나 역학자, 질병관리본부 등이 먼저 논문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며 “김우주 교수님이 메르스의 현재까지의 유행 현황과 임상 양상에 대한 논문을 서둘러 작성해 저명한 학술지에 투고해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학회 임원은 “교신저자는 김우주 이사장님이 맡는다”고 덧붙였다.
교신저자는 공동 집필한 논문의 총괄 책임자로, 논문 전체를 설계하고 수정하는 책임을 맡는다. 김 교수는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과 함께 정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의 민간대응팀장을 맡고 있는데다 지난 19일 황교안 총리 취임과 함께 메르스 특보로 임명돼 정부 방역대책의 책임을 나눠 맡고 있다. 전문가이지만 동시에 차관급 행정 책임자인 셈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의료계 관계자는 “국제 학계가 국내 메르스 사태에 큰 관심을 보이는 때에 감염학계가 서둘러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순 있다. 그러나 방역에 온 힘을 쏟아야 할 책임자가 이런 상황에서 학자로서 욕심을 내는 건 굉장히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김 교수는 메르스 노출 병원 명단 공개 여부와 관련해 애초 “병원 공개는 득보다 실이 크다”(6월3일)는 태도였는데, 보건복지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병원 명단 공개 방침을 정한 뒤엔 “지금이야말로 병원을 공개할 적기”(6월8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가 정부한테서 수백억원대 연구용역을 수주하고 있는 처지여서 적극적으로 쓴소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김 교수는 2009년 신종플루 사태 이후 정부가 발주한 2010~2016년 신종인플루엔자 사업단장으로 선정돼 690억원의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감염학계를 중심으로 꾸린 민간 전문가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청와대는 8일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김우주 교수를 팀장으로 한 즉각대응팀을 꾸렸다. 이 팀에는 감염내과 교수들만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유럽 내 메르스 발생 당시 영국의 공중보건국(PHE)이 ‘감염병 발생 관리팀’에 상시 참여해야 하는 관계자로 역학·소통·공중보건·환경보건·바이러스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꼽은 것과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