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22일 통일부 발표는 곧바로 정국을 뒤흔들었다. “왜 하필 김영철(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냐”는 이야기 함께, 결국 남남갈등을 노린 북한의 ‘한 수’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뒤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영철 부위원장은 2010년 3월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과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도발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다. 한국과 미국의 독자제재 대상에도 올라 있다. 보수와 정치권 자유한국당은 24일 김영철부위원장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을 저지하기 위해 당내에 김무성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김영철 방한 저지 투쟁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국당은 당 지도부의 수차례에 걸친 간곡한 설득 끝에 김무성 의원을 '김영철 방한 저지 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했다"라며 이렇게 전했다. 장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투쟁위원회는 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을 비롯해 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당 사무처 직원, 보좌진을 총망라해 3000여명으로 구성됐다. 투쟁위는 이날 오후 4시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비상 의원총회를 통해 본격 출범한다. 이에 앞서 투쟁위원장을 맡은 김무성 의원은 김성태 원내대표와 함께 이날 오후 2시 국회에서 긴급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투쟁 방향을 설명할 예정이다.
정치권을 포함하여 김 부위원장의 방남이 발표 이후 방남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천안함 피격 희생자 유족들과 예비역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올림픽 성공을 위해 대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천안함 사건이 있었을 때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당시 조사 결과 발표에서 누가 (사건의) 주역이었다는 부분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례적으로 설명자료를 배포하며 진화에 나섰고, 국방부는 침묵했다. 어리석음과 비겁함이 뒤섞인 모습에서 남북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런 해명은 정부가 마치 북한을 감싸는 듯한 오해를 낳았고 국회 파행과 보수 진영의 강력 반발을 초래하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급기야 통일부는 23일 브리핑을 통해 “천안함 폭침은 분명히 북한이 일으켰으며 김영철 부위원장이 당시 정찰총국장을 맡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구체적인 관련자를 특정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제를 달긴 했지만 북한이라는 대화 상대와 국내 반발 여론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과연 그럴까.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는 “2010년 3월26일에는 천안함 폭침 사건,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과 같은 군민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한 대남 도발이 자행되었고, 2015년 8월4일 DMZ 지뢰도발과 함께 8월20일 연천군 일대 포사격 도발을 감행하였다”면서 관련인물로 김정일, 김정은, 김영철을 명시했다.
통일부는 “정부는 상대가 누구이며 과거 행적이 어떤가에 집중하기보다 어려운 한반도 정세 하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인지 여부에 집중하고자 한다"며 "이런 차원에서 정부는 김 부위원장 방남 수용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고 국민 여러분께서도 대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이해해 주실 것을 부탁 드리겠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2010년 발간한 천안함 사건 합동조사보고서나 2010~2016년 네 차례에 걸쳐 발간된 국방백서 등에서는 천안함 침몰 주도자나 조직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7월 31일 국방부 국방교육정책관실이 작성해 국방일보에 게재한 ‘제31주차 기본정훈-제10과 북한의 끊임없는 대남 도발’이란 장병 정신교육 자료에서는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목했다. 대남공작기구들을 통합해 정찰총국을 만든 후 김정은의 최측근인 김영철을 책임자로 임명했다”며 “많은 북한 요인들이 숙청됐지만 김영철만은 유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영철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천안함 피격의 배후로 북한 독재정권 유지의 최고 공로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이나 정찰총국 개입 여부가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정찰총국은 북한이 2009년 대남 및 해외 공작을 총괄하기 위해 인민무력성 정찰국과 노동당 작전부, 35호실을 통합해 만든 조직이다. 김 부위원장은 정찰총국의 초대 수장이었다. 정찰총국은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2011년 농협 해킹을 비롯한 사이버 공격 등을 주도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김 부위원장이 정찰총국장으로서 도발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다.
문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의 정부 대응이다. 정찰총국이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라는 것은 일반 국민들도 잘 아는 사실이다. 정찰총국이 어떤 일을 했는지도 잊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 부위원장이 천안함 피격 당시 정찰총국장을 맡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관련자를 특정해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통일부 주장은 “술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으나 음주운전은 안했다”는 말만큼이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나마도 김 부위원장의 천안함 피격 개입을 시사하는 자료들이 나오면서 남남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이방카 보좌관과 김 부위원장의 고위급 북미접촉은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북미 대표단 실무자들 사이의 접촉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걸로 알려졌다. 앨리슨 후커 미국 NSC 한국담당 보좌관 같은 인물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후커 보좌관은 2014년 11월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석방을 위해 김영철 부위원장 등과 접촉한 전력이 있는 걸로 전해졌다.
구구절절한 해명 대신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을 맡고 있어 남북 대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여러 측면에서 과거와는 달라진 만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필요한 건설적 제안을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며 명분을 부각하고 북한에 정치적 부담을 안겨 방남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더 나았다는 평가다. 이쯤 되면 노회한 김 부위원장을 상대로 협상에 나섰다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한마디로 평창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은 명분일 뿐 실제는 남북관계, 나아가 북미관계를 조율할 북한의 특사단이라는 얘기다. 청와대와 정부가 처음부터 김영철의 전력에 대해 이런저런 해명을 늘어놓기보다 실질적 협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마무리와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을 고려, 방남에 동의한다”고 밝히는 것은 어땠을까. 김 부위원장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남북 대화의 명분도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살리는 대신 국방부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성우회를 비롯한 예비역들이 반대 의사를 밝혀도 마찬가지였다. “군인답지 못한 자세”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