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정치엔 능하지만, 좋은 통치에 무능하다.”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은 2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와 정치권 비난 발언에 대해 보수·중도·진보를 가리지 않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대통령 권력의 절대화를 지향”하는 ‘박근혜식 정치’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부재하다는 비판이었다.
■ “자신을 ‘초월적 존재’ ‘왕’으로 간주”
이날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등의 평가를 통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본 ‘박근혜 정치’를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거부권을 행사하며 정치권을 싸잡아 매도하는 박 대통령 모습에서 정치지도자로서의 대통령이 아니라 권력을 지켜내려는 ‘군주’의 모습이 연상됐다고 입을 모았다.
김윤철 교수는 “민주국가에서의 대통령 권력은 민심을 샀을 때 얻어지는 것인데 박 대통령은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과 왕을 헷갈려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대통령 권력의 절대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박상훈 대표는 “권력에 대한 물신화로 보였다. 한 인간, 여성, 지도자로서 고뇌가 드러나는 게 아니라 본인은 소외돼 있고 권력이 말을 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윤여준 전 장관은 “박 대통령 자신이 최고책임자가 아니라 본인은 그 위에 있는 ‘초월자’라는 의식이 있어 보였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인데도 책임의식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스스로 깬 ‘신뢰와 원칙’의 브랜드
그동안 쌓아올렸던 본인의 정치적 이미지와 자산을 스스로 깨트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상돈 교수는 “공약을 파기하면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자기기만 정치를 하면서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라며 과거 국회의원, 야당 대표 시절엔 행정부의 과도한 시행령 제정을 ‘입법권 침해’라고 비판했던 점 등을 예로 들었다.
박 대표도 “아무리 정치적 욕구나 전략적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는 얘기를 떳떳하게 하는 ‘자기기만’에 놀랐다”고 했다.
윤평중 교수는 ‘박근혜 정치’의 전형성을 언급하며 “불신을 키우고 갈등을 증폭하는 정쟁에는 능한데, 리더십을 통해 현안을 해결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통치에는 대단히 무능하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이번 사태도 “메르스로 인한 지지율 폭락, 민심 이반이라는 상황에서 레임덕(권력누수) 탈출을 위한 또 하나의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메시지는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왔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윤 전 장관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회의원은 국민 대표로 행정부를 견제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권과 입법권을 나눈 것 아니냐”면서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들을 여당 당원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민주정치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윤 전 장관은 또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중앙정보부 등 정치권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지만 지금 박 대통령은 그런 수단이 없다”며 “그런 점에서 여당이 통제되기는커녕 대통령으로부터 더 멀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