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질서를 위협하지 않은 집회를 해산하라는 경찰의 명령은 위법한 만큼 불응했다는 이유로 체포하려는 경찰을 폭행했다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공무집행방해와 상해,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2009년 12월 빈곤사회연대 회원 80여명과 함께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노숙인 추모문화제에 참석했다.
경찰은 문화제에서 정부 규탄 발언이 나오자 문화제를 빙자한 야간 미신고 불법집회라고 보고 해산명령을 내렸다. 3차 해산명령까지 불응하자 집회 참가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했다.
A씨는 경찰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전경의 무전기를 잡아당겨 빼앗고 휘두르다 전경의 얼굴을 쳐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무전기를 망가뜨린 혐의만 유죄로 판단,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1심은 당시 집회에서 폭력행위가 전혀 없었던 만큼 공공의 질서에 위험이 초래된 경우라고 보기 어렵고, 이런 상황에서 해산명령에 불응했다고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한 것은 위법한 공무집행이라고 봤다.
또 위법한 체포과정에 대항해 경찰을 폭행한 것은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당방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공무집행방해죄와 상해죄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경찰의 직무집행은 정당했다고 보고 공무집행방해죄와 상해죄도 유죄로 판단해 집행유예로 형량을 높였다.
엇갈린 하급심 판단에 대해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해산명령이 적법한 절차와 방식을 준수했는지, 당시 집회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이 초래됐는지를 심리하지 않고 공무집행방해죄 등을 유죄로 판단한 잘못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공공질서에 명백한 위험이 초래된 때만 집회·시위의 해산을 명할 수 있고, 이런 요건을 갖춘 해산명령에 불응할 때만 처벌할 수 있는 만큼 당시 해산명령과 현행범 체포가 적법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