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역시 승부사다. 친박계의 총공세에 맞서 비박계에서도 주말 동안 물밑에서 연락을 주고받으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서울=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지난 의원총회 직전 긴급회동을 하고 유 원내대표 사퇴 불가로 의견을 모았던 재선급을 중심으로 비박계 의원들도 조만간 다시 모여 대책을 논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비박계 의원들은 청와대와 친박계 의원들의 움직임에 대해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가급적 ‘선제 공격’은 자제하기로 하고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질타하며 여야 정치권을 맹폭했다. 서슬 푸른 그 모습에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결기를 떠올렸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노 전 대통령도 어느 누구 못지않은 승부사였다. 그는 생전에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서 승부사의 기질을 배웠다”고 했다.

시간은 대통령편이 아니다

 아무나 승부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빈틈을 보면 냉혹하게 찌르고, 싸움을 시작하면 결코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꺾지 못한 유일한 정치인이 박 대통령일지 모른다. 그가 한나라당에 대연정(大聯政) 제안을 했을 때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란 한마디로 눌렀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법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강제성이 없다면 개정할 필요가 없었고, 강제성이 있다면 위헌 소지가 있고 행정입법 왜곡의 폐해도 우려된다. 박 대통령은 빈틈을 찔렀고, 기습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때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국회가 잘못했지만 거부권 행사라는 ‘폭탄 던지기’에 야당이 물러서지 않으면 심각한 국력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대통령은 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을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거듭 주문했다. 대통령이 ‘칼의 정치’에 기울고 승부사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게 보이진 않는다. 칼로 보이는 적은 벨 수 있지만, 좀비와 같이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정치권의 구태를 벨 순 없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박 대통령으로선 조급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박 대통령은 난국의 돌파를 위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간은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 ‘6·25 맹폭’으로 잠시 주춤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당은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 할 것이다.

대통령의 승부처는 일 잘하는 내각과 정부를 만드는 데 있다. 결국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그러면 정치권과 승부를 볼 일도 없다. 박 대통령은 사퇴가 불가피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후임부터 제대로 구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보건의료 행정을 쇄신할 사람을 구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청와대가 벌써 인선에 착수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의 승부처는 인사다

박 대통령에게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수첩인사’ ‘불통인사’의 묵은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대통령의 생각부터 달라져야 한다.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널리 구하고 때로는 대통령이 고사하는 사람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는 것은 어떨까. 대통령이 삼고초려(三顧草廬)해 구한 사람을 정치권이 트집을 잡으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인 장관들은 내년 총선을 위해 늦어도 연말에는 바꿔야 한다. 그 시기는 앞당겨질 수도 있다. 이들의 ‘줄사퇴’에 지금부터 대비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정치권과의 단기전에서 승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은 권좌에서 내려온 후 ‘실패의 기록’뿐이라며 정치를 한 것을 후회했다. 퇴임 후 국민의 평가로 대통령의 승부는 판가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