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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이 양말의 서늘한 풍자..

짝짝이 양말의 서늘한 풍자

온라인뉴스 기자 입력 2015/07/11 14:20
'왜요?'는 강력한 무기다. 조막만 한 꼬맹이가 말간 얼굴을 반짝 쳐들고 '왜요?'라고 외치는 순간, 느긋했던 일상은 위기를 맞는다.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 강속구 같은 질문이 잇달아 날아든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에 물음표를 달면 당황스럽다. 익숙한 것들이 새삼스레 낯설고 머릿속은 하얗고 대답은 궁하다. 주섬주섬 그럴듯해 보이는 대답을 늘어놓지만 또 다른 '왜요?'가 냉큼 따라붙는다. 적당한 말을 찾기 어려운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슬슬 불안해진다. 짜증도 난다. 따져보면 미심쩍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걸 그저 남들에게 뒤처질까 봐 잘하라고 다그치는 건 아닐까. 결국 백기를 들고 만다. '그냥 그런 거야.'

<짝짝이 양말>의 주인공 샘이 묻는다. '사람들은 왜 짝을 맞춰서 양말을 신을까?' 엄마는 할 말이 없다. 여태껏 양말을 제짝 찾아 신는 법만 가르쳤다. 짝 맞춰 신어야 하는 이유는… 글쎄다. '그건 당연한 거야.' 이렇게 어정쩡한 대답에 넘어갈 리가 있나. 아이는 계속 따져 묻는다. 왜 모두들 양말을 짝 맞추어 신느냐고, 짝짝이로 신으면 안 되느냐고, 양말을 짝 맞추어 신는 법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느냐고. '글쎄다. 엄마도 모르겠네.' 샘은 이제부터 짝짝이 양말을 신겠다고 선언한다. '짝짝이 양말이 더 예쁘고 재미있어.'

↑ <짝짝이 양말> 욥 판 헥 글, 마리예 톨만 그림, 정신재 옮김, 담푸스 펴냄

작은 양말 그림 뒤에 펼쳐지는 '그림책의 반전'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매혹적인 색감, 페인팅과 드로잉, 콜라주가 멋스럽게 어우러진 세련된 스타일이다. 색면을 이용하여 흥미롭게 구현한 공간 위에 오밀조밀 앙증맞은 캐릭터들이 꼬물거린다. 짝짝이 양말을 신은 샘이 친구들 앞에서 발을 들어 보이는데, 양말은 정말 깨알만 하다! 왼쪽은 흰색 점박이 양말, 오른쪽은 초록색. 깨알만 한 양말들이 제각각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하얄 뿐 아니라 줄무늬, 점무늬까지 제대로 갖췄다.

재미난 일은 같이 하고 싶은 법, 아이들은 양말을 한 짝씩 벗어 들고 친구들과 바꿔 신으며 신이 났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뒷장부터는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묘하다. 평생 짝짝이 양말만 신어온 듯 천연덕스러운 사람들에, 짝짝이 양말로 드레스코드를 맞추려고 야단법석인 공연장에, 비행장에선 장사판도 벌어졌다. 어느새 짝짝이 양말이 내 마음대로 신는 양말, 즐겁게 서로 나눠 신는 양말이 아니라, 뒤처지면 안 될 최신 유행이자 수지맞는 장삿거리가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임금까지 끼어들어 나라 안의 모든 양말을 짝짝이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이렇게 새것은 헌것이 되고 선택은 규제와 관습이 되는 걸까.

이제야말로 '왜요?'를 외쳐야 할 순간. 사랑스러운 그림 뒤에 숨겨놓은 은밀한 풍자가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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