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용기
2014년 4월16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도처에서 대형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언제나 사고 없는 나라가 될까요? 저는 둘째 딸 아이가 아시아나의 승무원이어서 대형 사고에 대해 관심이 큽니다. 얼마 전에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곧 이어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로 18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인구 11만 명인 경남 밀양시는 도시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네 탓 공방에만 혈안입니다. 야당은 문재인 중앙정부의 재난 대응이 잘못됐다며 비판합니다. 반면 여당은 홍준표 자유한국당대표가 경남지사 시절에 소방 안전 대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비난합니다.
지금 정치인들이 재난 현장에 달려가 사진 찍기보다 정작 서둘러야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제대로 된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국회 스스로 법적 미비점을 손질하는 일이 그것이지요.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 화재 이후에도 소방 관련법 5건은 아직도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고 하니 늑장 처리는 국회의 직무 유기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역대 대형 사고들이 대체로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참사였다고 강조합니다. 언제나 우리는 이 안전 불감증을 탈피하고 사고공화국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에서 출발한 국내선 항공기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륙한 지 몇 분 만에 새떼와 충돌하여 2개의 엔진을 모두 잃게 된 것입니다.
체즐리 설런버거(설리) 기장은 바로 관제탑에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관제탑의 지시로 회항하려고 했으나, 기장은 그때까지 버틸 수 없을 거라고 직감했습니다. 설리 기장은 비행기를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비행기의 두 엔진이 폭발한 후 무동력으로 동체착륙을 한다는 것은 이전에도 성공한 적이 없었을 만큼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설리 기장은 그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라 판단했고, 바로 승객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승무원들은 승객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최대한 편안하게 지시사항을 구령(口令) 합창으로 전달했습니다. 비행기는 기적적으로 파손되지 않고 허드슨 강에 잘 착수하였습니다. 설리 기장은 승무원들과 함께 먼저 승객들을 대피시켰습니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한 명의 승객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마침 근처에 있던 구조용 보트와 통근 페리 등이 구조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경찰들과 의료진, 소방대원들도 즉시 현장으로 달려왔습니다. 추운 날씨라 구조가 늦어졌다면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지만 24분 만에 승객과 승무원 155명 전원이 구조되었습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정확한 판단을 한 설리 기장의 리더쉽과 그를 믿고 따라 준 승무원과 승객들, 그리고 구조대원 모두 하나 되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24분이라는 구조 시간 동안 이들에겐 ‘나’라는 개인보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가 위험에 빠진 국민을 구조하지 않았고, 진실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탄압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희대의 비극 세월호 참사 때, 선장은 승객들을 대피시키기는커녕 승객들 몰래 먼저 탈출을 했습니다. 무려 전체 승객 476명 중 304명이(단원고 250여명) 죽거나 실종된 사고이자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확대된 인재였습니다.
이 참사는 단순히 배가 침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건이 아닌, 그 이상의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안전 불감증에 빠져 있던 우리나라의 안전 관리의 현실과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까발렸던,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출범 2년차의 박근혜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경제계, 사회계, 정치계는 모두 엄청난 후폭풍과 침체, 그리고 공황에 시달렸습니다. 사실상 이 참사 이후 언론뿐만 아니라 정계, 경제계, 교육계 모두 이 사건에 매몰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후에 야기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과 박근혜정부의 비참한 몰락도 결국 세월호 참사와 직간접적 연관이 있었던 것입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이었지만, 탄핵 여론 형성의 시발점이 세월호 참사였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세월호 참사의 무한책임을 정부와 대통령에게 묻고, 결국엔 정부를 파멸로 이끌 만큼,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태였던 것입니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해경 123정’ 정장이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인 9시 30분에 간단하게 대피방송만 했어도 인명피해가 극심하지 않았을 거란 법원의 판단입니다. 어쨌든 이런 대형 참사가 다시는 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지켜야 할 사항을 이 뉴욕 비행기 사고에서 보여 주었듯이 우리는 지도자의 리더십을 믿고 모든 사람들이 잘 따르면 그 위기에서 살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의 리더십이 생각납니다. 영웅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은 총으로 위협하는 해적에게 들키지 않게 엔진오일에 물을 섞고 배를 갈지자로 몰아갈 때 겁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해적들에게 뼈가 부러질 만큼 두들겨 맞으면서도 공포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최대 공로자는 목숨을 걸고 ‘퍼펙트 작전’을 수행한 청해부대와 해군 특수전 부대(UDT) 요원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석해균 선장은 또 한 사람의 영웅으로 기록될 만합니다. 인질로 붙잡힌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황에서 용기와 희생정신을 발휘한 그는 분명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그 석해균 선장의 희생정신과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리더는 자신의 위험보다는 구성원들을 섬기고, 자신의 안전보다는 구성원들의 안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리더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맨 아래에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리더에게는 자기희생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그 용기에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만용(蠻勇)으로 일의 선후를 알지 못하고 완력만 주장하는 것입니다. 둘은 의용(義勇)으로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불의를 치는 것입니다. 셋은 도용(道勇)으로 외유내강으로 정당한 뜻을 굽히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는 것입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은 맑고 밝고 훈훈한 도용으로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을 삼아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3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