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준석 기자] 18일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인수대비는 과연 며느리를 죽였나?’ 편이 방송된다.
“고얀 것, 당장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려라!”
드라마 속 인수대비의 단골 대사 아닐까. 조선 9대왕 성종의 아내였던 폐비 윤씨. 후손이 귀했던 왕실에서 연산군까지 출산한 그녀였는데. 성종의 후궁들에게 투기했다는 이유로 폐비된다.
그 후 사가로 쫓겨난 그녀는 사약을 받고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이는 조선 역사상 왕비가 사사된 최초의 사건이다. 드라마에서는 시어머니 인수대비가 폐비 윤씨의 죽음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과연 그녀는 며느리를 내쫓고 죽인 ‘악녀(惡女)’인가?
명문가 청주 한씨 집안의 딸이었던 인수대비는 수양대군의 며느리가 된다. 그 후 계유정난을 통해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며 세자가 된 남편을 따라 세자빈으로 책봉되는데 왕의 부인이자 왕의 어머니 자리가 예약된 상황. 하지만 3년도 지나지 않아 남편 의경세자가 죽고 그녀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린다.
조선 8대왕 예종이 즉위 2년도 되지 않아 죽고 만다. 다음 왕은 예종의 아들이 아닌 조카 자산군(성종)이었다. 바로 인수대비의 아들이었다. 13살의 성종을 대신해 할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정희왕후의 수렴청정 기간 동안 인수대비는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큰 힘이 된다. 뿐만 아니라 명과의 외교 문제에서 고모인 공신부인과 안팎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중부 견평방의 민가(民家)에서 세 발 달린 닭을 낳았다” <성종실록 291권>
성리학 이념으로 국가를 통치하려 한 성종. 인수대비는 어머니로서 그를 도와주기 위해 애를 쓴다. 그녀의 정치적 활동에 신하들의 불만은 늘어 가는데. 급기야 조선에 괴이한 동물이 등장하고 신하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진다. 성리학을 지지했던 인수대비가 이토록 신하들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곧 좌승지 이세좌에게 명하여 윤씨를 그 집에서 사사하게 하고, 우승지 성준에게 명하여 이 뜻을 삼대비전에 아뢰게 하였다” <성종실록 144권>
성품에 논란이 있었던 폐비 윤씨는 궁궐에서 쫓겨나다 못해 사약을 받게 된다. 비극의 서막을 연 폐비 윤씨의 죽음. 이 죽음에 대해 우리는 사실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과연 그 책임을 인수대비에게 물을 수 있을까?
독한 시어머니 이미지에 갇힌 인수대비의 참 모습은 3월 18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 TV ‘역사저널 그날-인수대비는 과연 며느리를 죽였나?’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