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대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조문 마지막날인 9일 몰려드는 인파와 즐비한 조화(弔花)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기자들은 ‘혹시나’하고 기다려봤지만 ‘역시나’였습니다.
청와대는 “유 전 원내대표 측이 조화와 부의금을 사양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조화를 보냈습니다.
“(이병기 비서실장이) 개인적 판단에 따라 보낸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개인적 판단이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판단해 안 보내기로 했다는 것인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우선 참모들이 백번 잘못한 겁니다. 이렇게 지적돼야 마땅합니다.
아무리 상가에서 사양한다고 한들 ‘협량정치’ ‘옹졸한 정치’ ‘쩨쩨하다’는 비판은 박 대통령에게 쏟아질 뿐입니다.
이병기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대통령이 극구 싫다고 하더라도 설득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비서실의 입장도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
지난 1월말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주간은 ‘대통령 弔花에 대한 믿기 힘든 얘기’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대통령 근조화환’을 너무 늦게 받은 경우와 청와대 수석에게서 조화를 보내겠다고 들었는데 받지 못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칼럼은 “조화 보내는 것도 대통령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행히 박 대통령은 장관들을 장기판 졸(卒)처럼 갈아치우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칼럼 게재 바로 다음달 친박 의원 2명이 장관에 내정되고 불과 7개월 만에 후임자가 발표돼 갈아치워지는 모습을 보면 ‘장기판 졸’이 따로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정치쇄신위원으로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으로 활약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지난해 11월 모친상 때 박 대통령의 조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평소 사돈의 팔촌 경조사에도 조화를 보내 이름을 알리는 여당 정치인도 단 1명만 조화를 보냈습니다.
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집권 여당 정치인들이 권력자의 의중을 파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상에는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9일 빈소를 찾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유승민 의원 같은 능력 있고 소신 있는 정치인을 내칠 게 아니라 보듬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굳이 보듬고 끌어안을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통령으로서 전직 여당 원내대표에게 조화 정도는 보낼 수 있는 게 우리 사회의 상식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