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지역에 근무하는 소방관이 지난 6월 '누군가가 다쳤다'는 신고를 받고 가정집에 출동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남편과 부인이 싸우는 '가정폭력' 현장이었다. 소방관은 싸움을 말리려다 오히려 얻어맞기만 했다.
소방공무원에 대한 처우와 근무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와 함께 지난 3월부터 6개월간 진행한 '소방공무원 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전국 소방공무원 8525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3개월 이내에 일반인으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소방관이 37.9%에 달했다. '지난 12개월 이내에 일반인으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8.2%였다. 신체 폭력을 당했다고 위에 보고한 경우는 18.6%에 그쳤다. 그중 53%는 '보고했지만 관서에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응답 소방관의 43.2%는 '최근 1년간 불면증 및 수면장애를 겪었다'고 했고, 19.4%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겪었다'고 대답했다. 일반인의 15~20배에 이르는 수치다.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한 소방관도 7.2%에 달했다. 응답 소방관 중 5.1%는 교통사고를 겪은 적이 있지만, 그중 69.5%가 '병원비를 본인이 부담했다'고 했다. 지난해 부상을 당했다고 대답한 소방관 중 83.3%는 공무상 요양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방관들의 근무 여건이 열악하다는 지적은 그동안 끊이질 않았지만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연구팀은 "일선 소방관들이 저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돼 있어 근무 환경 개선 요구가 정책에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