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도 오늘 수능시험장으로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2일 오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시험장으로 가지 못한 엄마는 딸이 앉아 있던 책상에 엎드려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을 뒤덮은 초췌한 모습의 아버지가 아들이 쓰던 교과서를 어루만지며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아이를 시험장으로 보내는 대신, 이들은 이날 오후 수원지법 안산지원 410호 법정에 설치된 ‘세월호 중계법정’에서 이준석 선장 등에 대한 대법원 선고 재판을 지켜봐야 했다.
같은 시각, 세월호 참사 당시 극적으로 탈출해 구조됐던 단원고 3학년 학생 72명은 ‘고통의 시간’을 뒤로한 채 수능을 치렀다.생존자 75명 가운데 이날 수능에 응시한 72명은 후배들과 학부모·교사는 물론, 하늘로 떠나고 만 친구들의 엄마와 아빠의 격려와 응원 속에 시험장으로 향했다. 참사 이후 4개 반으로 나눠 공부해온 이들은 시험장마다 3~4명씩 나뉘어 시험을 치렀다. 경기도교육청 38지구 제13시험장인 안산 양지고에서는 16명이 시험을 치렀다.
몇몇 수험생들은 가방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의 노란색 리본을 달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희생된 친구를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듯했다. 1~2학년 후배 4명은 ‘단원고’, ‘수능 대박 기원’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아침 7시부터 응원전에 나섰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기나긴 단식투쟁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비록 우리 아이들은 수능을 볼 수 없지만, 전국에 우리 유민이 친구들, 천국에 있는 아이들이 응원합니다”라고 적었다.
오후 4시16분. 서울 광화문광장에 책가방이 하나둘 놓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로 떠난 단원고 학생(250명)들은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220여개의 가방으로 남았다. ‘2015년 수능일 세월호 기억행동, 아이들의 책가방’ 행사에서 시민들은 각자 준비한 가방을 반 순서대로 놓인 학생들 자리에 놓아두고, 가방에 학생의 이름이 적힌 단원고 명찰과 노란 리본을 달았다. 아직 세월호 안에 있는 실종 학생 4명의 자리엔 노란 종이배가 놓였다.
을지중 3학년 김건(15)군은 자신이 메던 가방과 집에 있던 가방을 챙겨, 이수연·이연화 학생 자리에 놓았다. 김군은 “국가가 형·누나들이 시험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 간 것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에 가방을 가져왔다”고 말했다.아이들의 자리에 가방이 놓이는 것을 지켜보던 박예슬양의 아버지 박종범(49)씨는 “아이들이 있었다면 시험장에 태워다 줬을 텐데…. 아이들이 하늘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험 감독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