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등
정권 부담 덜어준 사건 처리 표적
총선 불안한 야당 "송곳 검증"
'근시' 병역면제도 논란 가능성
김수남 대검찰청 차장
차기 검찰총장 내정자인 김수남(56ㆍ사법연수원 16기) 대검찰청 차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어느 때보다 공방이 치열할 전망이다. 차기 총장은 박근혜정부 후반기 사정(司正) 수사, 특히 내년 4월 총선 관리라는 중책을 맡게 된다. 김 내정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 기반인 정통 TK(대구ㆍ경북) 출신이다. 야권에선 그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하며 ‘송곳 검증’을 벼르고 있다. 평소 합리적이고 꼼꼼한 일 처리로 신망이 높은 김 내정자로선 험로가 예정된 상태다.
대검은 청와대의 발표가 있던 지난달 30일 곧바로 인사청문회 준비단을 꾸려 인사청문회 대비에 들어갔다. 이금로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단장으로 해, 정수봉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1부장이 신상팀장으로 합류했다. 이들은 지난 주말에도 대검으로 출근, 본격적인 청문회 준비에 들어갔다. 김 내정자도 토요일인 지난달 31일 대검에 나와 과거 처리 사건들을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청문회에서 김 내정자의 재산 문제는 큰 쟁점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현재 재산은 21억 6,259만원으로, 2009년 1월 검사장 승진 이후 공개된 재산은 19억~24억원대을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은 배우자와 공동 명의로 보유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1채가 전부이고, 나머지는 차량 2대와 본인ㆍ배우자ㆍ자녀 2명의 예금 등이다. 본인 명의의 헬스클럽 회원권(5,600만원 상당)도 보유하고 있다. 5억원 상당의 재산 변동이 생긴 이유는 가입한 펀드가액의 변동, 본인 및 배우자의 급여 저축 등에 따른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병역 문제는 다소 논란이 일 수도 있다. 김 내정자는 1982년 근시로 병역을 면제 받았다. 당시 이런 사유로 면제판정이 내려진 것은 어느 정도 흔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대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잘 설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사안은 역시 ‘정치적 편향성’이다. 그가 지휘한 사건들의 처리결과를 보면 유독 집권세력 쪽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인 2009년 초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에 대한 구속 수사가 대표적이다. 이명박(MB)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박씨 사건을 수사한 부서는 일반 형사부가 아니라, 인지사건을 맡는 마약조직범죄수사부(현 강력부)였다. 이 사건 수사는 검찰 안팎에서 “비판 여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지적을 받은데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무리한 기소라는 딱지를 떼지 못했다. 특히 당시 검찰은 사문화된 조항이나 마찬가지였던 전기통신기본법의 허위사실 유포 금지 조항을 박씨 기소의 근거로 삼았는데, 이 조항은 이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기도 했다.
김 내정자는 수원지검장 시절인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이어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수사를 지휘했는데 핵심 혐의인 내란음모 부분도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2014년에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과 관련,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을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고 같은 당 김무성 대표 등 다른 여당 인사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해 ‘전폭적인 여권 봐주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법원은 그러나 정 의원을 정식 재판에 회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지난해 말 정국을 달군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파문’ 수사가 현 정부에 부담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처리된 것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이 사건에서 당시 김 내정자가 이끈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와 특수2부는 문제의 본질인 국정개입 의혹보다는 문건 유출 경위 수사에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법부 개혁" 2차 사법파동 참여
한편, 판사 출신인 김 내정자가 1988년 ‘제2차 사법파동’에 참여한 것으로 이날 알려졌다. 2년차 판사로 대구지법에 근무하던 당시 그는 동료 판사 335명과 함께 사법부의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내정자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확인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차 사법파동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가 5공화국 인사인 김용철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소장 판사들이 반발, 이틀 만에 김 대법원장의 사퇴를 이끌어냈던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