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고향 마을에도 애도의 물결이 퍼지고 있다.
경남 거제는 김 전 대통령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자,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곳이기도 하다.
[서울, 연합통신넷= 김현태, 이천호, 김대봉기자] 대계마을엔 김 전 대통령의 생가가 복원돼 있을뿐 아니라 기록 전시관도 차려져 있어 주말이면 평균 200~300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휴일 이른시간인만큼 아직까지 마을에는 고요함이 깔려있다.
하지만 오늘 새벽과 아침, 뉴스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큰 산이 무너졌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한 주민은 김 전 대통령이 이 작은 어촌 마을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는데 너무 일찍 서거했다며 가슴 아파했고
또 다른 주민은 과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모습이나, 대통령 시절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일 등을 입에 올리며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도 했다.
일부 주민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의 또 다른 표현으로 느껴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22일 0시22분 서울대병원서 향년88세로 서거 '양김 시대 역사 속으로'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향년 88세다. 이로써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20세기 후반 한국 정치사의 중축을 이뤘던 양김 시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날 0시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 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 원장이 전했다.
오병희 원장은 "고인(김 전 대통령)께서는 과거 반복적인 뇌졸중과 협심증 및 폐렴 등으로 수차례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으며,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반신불수를 동반한 중증 뇌졸중과 폐렴으로 입원한 바 있다"며 "고인은 19일 고열로 입원했으며,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이송해 치료를 했으나 상태가 악화돼 서거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로서 사망에 이른 직접적 원인은 허약한 전신 상태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이 겹친 것"이라고 덧붙였다.
1927년 경남 거제군에서 태어난 김 대통령은 경남고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에서 평생의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 정권에 맞섰다. 당시 상도동을 거점으로 한 김영삼(YS)계와 동교동을 거점으로 한 김대중(DJ)계는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79년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맞서다가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신군부 치하에선 단식 투쟁, 가택 연금 등의 모진 탄압을 당하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해 저항했다.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던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뒤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했다가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다. 낙선 이후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이뤄낸 뒤 1992년 대선에서 양김 시대의 한 축인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문민시대'를 열었다.
재임 기간에는 하나회 청산과 금융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통해 투명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이 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친인척 비리와 임기 말 외환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로 인한 비판적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이날 긴급 브리핑에서 밝혔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정오께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했으며,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오 원장은 설명했습니다.
서거 당시 김 전 대통령 옆에는 차남 현철씨 등 가족이 자리해 임종했으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곁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올해 88세로, 고령인 데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때마다 며칠씩 입원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19일 입원하기 전에도 이달 10일 검진 차 병원을 찾아 17일까지 입원한 뒤 퇴원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정치를 양분해 이끌어왔던 김대중·김영삼으로 상징되는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金洪祚)와 어머니 박부연(朴富蓮)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돼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을 지냈습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盧泰愚)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습니다.
하지만 민주정의당ㆍ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 박철언 전 의원과의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후보를 쟁취했습니다.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金大中)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군정 종식'을 이뤄내며 '문민시대'를 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 다섯 차례를 역임하며 평생의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정권에 맞섰습니다. 양김의 '상도동·동교동'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모진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87년 6월 항쟁' 주도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군사정권 기반 약화와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대도무문'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 증진의 외길을 걸으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자신의 신조처럼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체제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재임 기간 '칼국수'로 상징되는 검소함과 청렴함을 표방하면서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 친인척 비리와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 초래로 임기 초반 누렸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대부분 상실하며 정치적 그림자도 있습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남지역을 포위한 '3당합당', 상도동으로 대변되는 '가신정치'는 부(負)의 유산으로 기억됩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부산·경남)를 지역 기반으로 삼은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영원한 리더로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평생 거르지 않다시피한 새벽 조깅과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딸 혜영(63), 혜정(61), 혜숙(54)씨, 아들 은철(59), 현철(56) 씨 등 2남 3녀가 있습니다.
빈소 방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 새벽부터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2일 0시 22분 혈액 감염 의심으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향년 88세로 서거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소식을 듣자마자 빈소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오전 2시30분께 가장 먼저 장례식을 찾았다. 상도동계 핵심인물 중 한 명인 김 전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인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마지막 국회의장을 지냈다.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인 문정수 전 부산시장은 오전 4시께 영정사진 들고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뒤이어 차남 김현철 씨와 가택연금 시절인 1981년 발족된 민주산악회 이상천 회장, 김재철 YS사랑산악회장, 민정열 민주동지회 사무총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 지인들도 방문했다.
장례식장 출입은 차단된 상태이지만 유리창을 통해 조화를 세우는 등 빈소 마련에 한창인 모습이다. 장례식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장례씩 준비에 5시간이 걸린다"며 "이르면 오전 9시 30분 쯤 준비가 마감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빈소는 오전 10시께부터 개방될 예정이다. 발인은 26일 오전이다.
김 전 대통령은 5일간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