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색의
문재인 정부 들어 일자리위원회 까지 조직해 범 정부차원에서 일자리 확대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청년 고용시장은 사상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청년층(15~29세) 실업률이 9.9%로 통계 기준이 바뀐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고, 청년층 실업자 수도 2016년과 같은 43만5000명을 보여 역시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3월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연간 및 1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는 2655만2000명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전년보다 31만7000명 증가한 수치이지요. 통계청은 실업자 수 증가가 청년층과 60세 이상 고령층의 고용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탓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청와대가 3월 15일 강원랜드 채용과정에서 부정청탁 등이 확인된 226명 전원에 대해 직권 면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채용비리가 드러났는데도 가담자나 부정합격자 처리에 소극적인 공공기관 책임자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으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입니다.
청와대가 부정합격자에 대해 ‘즉시 해고’를 결정한 것은 ‘신속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리의 전모가 드러나고 사법처리가 확정되는 데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강원랜드가 첫 표적이 된 이유는 채용비리가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가 처음 밝혀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왜냐하면 2012~2013년 채용인원 518명 가운데 483명의 부정청탁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전형 과정에서 이 중 226명은 점수 조작으로 합격하는 바람에 다른 응시생들이 피해를 봤습니다. 탈락한 취업준비생들은 좌절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른바 '빽' 동원해 일자리 쟁탈전을 벌인 비리의 소굴이 강원랜드였던 것입니다. 더 가관인 것은 정치인이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으나 오히려 압력을 가해 무마를 시도한 점입니다. 결국 재수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는 비단 강원랜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발표된 공공기관 채용비리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5년간 1190개 기관 중, 946곳에서 2324건의 비리가 적발됐습니다. 민간 기업은 채용비리 실태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고 합니다. 국민은행과 홈앤쇼핑은 채용비리가 드러나 관련자가 구속되거나 불구속 입건됐습니다. 강원랜드의 채용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채용비리가 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지금 청년실업은 재난 수준이라고 합니다. 좋은 일자리인 공공기관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밤낮 없이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는 취업준비생의 노력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돈 없고 빽 없다고 취업문턱에서 좌절한다면 올바른 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비리가 설 땅을 없어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다가올 것입니다.
지난 촛불정국에서 젊은이들이 특히 분노했던 것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얽힌 입시 · 학점 비리였습니다. 정유라는 페이스 북에 “돈도 실력”이라며,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글을 올려, 많은 젊은이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청년 취업난 속에 각종 스펙을 쌓느라 바쁜 젊은이에게서 ‘부모 잘 만나는 게 최고의 스펙’이라는 자조(自嘲)가 튀어 나온다고 합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 1762~1836)의 논문에 <통색의(通塞議)>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막힌 곳이 뚫리지 않고는 올바른 정치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언어 그대로 막힌 곳을 뚫어 통하게 하자는 내용이니, 사회적 소통이 없이는 되어 질 것이 없다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다산은 특히 인재정책에 역점을 두고, 가문이나 적서(嫡庶)를 구별하거나, 출신 지역을 가르고, 당파 때문에 편파적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일처럼 사회적 막힘은 없다고 여기고, 그 세 부분의 막힘을 뚫자고 주장했습니다.
다산은 “인재(人材)를 얻기 어렵게 된 지가 오래인데, 온 나라의 영재(英材)들 가운데서 발탁(拔擢)을 해도 오히려 부족함이 있겠거늘, 하물며 영재의 8~9할을 버리고서야 어찌 인재를 얻겠으며, 온 나라의 생령(生靈)들을 육성시켜도 오히려 인재가 나타날 둥 말 둥한데, 백성의 8~9할을 내버리고서야 어찌 인재가 나타나겠는가!” 하고 탄식합니다.
“소민(小民)이라 하여 등용(登用)하지 아니하고, 중인(中人)이라 하여 등용하지 아니하고, 관서(關西,평안도) ․ 관북(關北,함경도)지방 사람이라 하여 등용하지 아니하고, 해서(海西,황해도) ․ 개성(開城) ․ 강화도(江華島) 사람이라 하여 등용하지 아니하고, 관동(關東,강원도)사람과 호남(湖南,전라도)사람의 반(半)을 등용하지 아니하고, 서얼(庶孼)이라 하여 등용하지 아니한다.”
“등용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수십 가구의 문벌(門閥) 좋은 사람들 뿐인데, 그 가운데에는 어떠한 사건에 연루(連累)되어 등용될 수 없는 사람들이 또한 많다. 버림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자포자기(自暴自棄)하여 문학(文學)이나 정치(政治) ․ 경제(經濟) ․ 군사(軍事) 등의 문제에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고, 오직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술이나 마시면서 방탕(放蕩)한 생활(生活)을 한다.” 이러고서야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2015~2016년 한국가스안전공사 공채에 응시했던 한 지원자가 최근 합격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3년 만에 뜻밖의 전화를 받은 지원자는 ‘혹시 보이스 피싱이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뒤늦은 합격 통보는 2~3년 전 채용비리의 피해자로 밝혀졌기 때문이지요. “연이은 취업 실패에 자존감이 상해 있었는데, 그래도 정의는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취업생의 외침은 드디어 나라다운 나라가 되어간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차별과 배제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패와 무능이 조직을 병들게 만듭니다. 공정한 채용이 나라를 살리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위법한 방법으로 사사로이 뽑힌 직원이 과연 공적 임무에 필요한 자세와 능력을 갖추었을까요? 바로 막힌 곳을 뚫는 ‘통색의’가 없이는 올바른 정치라 할 수 없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3월 2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