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YS) 서거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화해’와 ‘통합’이 부각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중 치적으로 꼽히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현재적 의미도 부활하고 있다. 경제적·지역적·이념적 분열상이 심화하고, 역사 문제가 이런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 때문이다.
여야는 정도(正道)를 걸으면 거칠 것 없다는 김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 정신을 받들고, 생전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썼던 '통합'과 '화합'의 중요성을 외쳤다. 하지만 서거 이튿날 열린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간의 회동에서는 영결식 당일(26일) 국회 본회의 시간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해서조차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13년 입원 중 ‘통합’과 ‘화합’이라는 두 단어를 쓰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차남인 현철씨가 전했다. 이는 별도 유언을 남기지 않은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메시지가 됐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DJ) 서거 당시에도 ‘화해’와 ‘통합’이 화두가 됐다.
YS의 공과는 뚜렷하다. ‘민주화 투사’가 1990년 ‘3당 야합’을 감행해 한국 정치의 후퇴를 초래한 것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부른 것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의 서거를 계기로 ‘화해’와 ‘통합’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 완성의 마지막 퍼즐이 ‘국민 통합’이라는 진단 때문이다.
YS는 1993년 ‘문민정부’ 출범 후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12·12 군사반란과 5·18 유혈 진압 책임자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켜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돼야 한다’는 국민의 상식을 환기시켰다. 정권 초 지지율이 90%에 이르는 등 국민 통합에도 기여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균열이 일어나지 않은 분야를 찾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권에도 지역구도 타파, 민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정치 체계 개편 등 통합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DJ가 서거 전 “민주주의가 반석에 섰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2009년 1월20일)고 탄식하던 상황이 지금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훼손되고 서민경제는 더욱 깊은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역사의 시곗바늘을 1970년대로 회귀시키려 하고 있다.
서울대 강원택(정치외교학부) 교수는 “YS의 용기와 결단 이면에는 시대의 변화를 보는 눈이 있었다”며 “민주화가 올 것이라는 판단과 그 판단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실천하며 주변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조문객들은 권력의지는 불굴에 가깝고, 실천할 때는 전격적이고 신속하게 밀어붙이며, 필요한 인재를 향해선 포용력과 친화력을 보이는 걸 YS 정치의 특징으로 꼽았다. 하지만 드러난 스타일의 이면에 있는 능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3일 전국 분향소에서 시민들 추모 행렬이 이어지는 것도 ‘양김’이 남긴 ‘화해와 통합’에 대한 갈망과 연관돼 있다는 말이 나온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이날 9300여명을 포함해 1만3000명 이상 다녀갔다. 국회의사당과 서울광장 등 전국 시·도에 설치된 분향소에도 시민들의 조문이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