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YS) 서거로 조성된 ‘조문 정국’이 한국 사회와 정치, 리더십의 현주소를 비춰보는 ‘거울’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와 역사, 통합과 소통 등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들’은 박근혜 정부의 모습과 강한 ‘콘트라스트(대비) 효과’를 내고 있다. YS 재평가가 박근혜 정부에서 나타나는 ‘퇴행’에 대한 ‘대항’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YS) 서거를 계기로 진행되고 있는 YS 공과(功過)에 대한 ‘재조명’ 작업 귀착점이 박근혜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과 역사 바로 세우기, 통합의 마지막 메시지, 이념·계파를 뛰어넘는 인사 스타일 등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나 리더십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면서다. 김 전 대통령의 공과를 이야기할수록 박 대통령의 과(過)가 도드라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이들은 고인의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가장 많이 입에 올리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발전과 자유·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도 주목받고 있다. 친일잔재 청산,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성격 규정,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세력 처벌 등 일련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재임 중 최고 치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역사 ‘퇴행’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는 YS 재평가를 거쳐 ‘민주주의 문제’로 나가고 있다. 과거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통해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와 인권이 박근혜 정부 들어 퇴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김영삼 정부 첫 통일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전 부총리는 지난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 동안 역사가 후퇴했다. 국정교과서와 민주노총 압수수색에 이르기까지 유신체제로 회귀하는 조짐”이라고 밝혔다. 김영삼 정부 최장수 청와대 대변인 겸 공보수석이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같은 날 YS 빈소에 조문객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걱정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화를 이끈 지도자에 대한 애정이 더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에서 거꾸로 되돌리려는 내용들이 김영삼 정부에서 이뤄진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점도 YS 재평가가 대항 지점이 되는 이유다. 김영삼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규정했지만 박근혜 정부에선 1948년 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정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군사혁명’으로 규정돼 있던 5·16을 군사쿠데타로 정정하고 교과서에 반영토록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인사들은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거나 다른 견해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역사 바로 세우기’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도동계 마지막 세대인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25일 TBS라디오에서 “요즘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라든지 이런 부분들을 보면 역사 바로 세우기의 방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제대로 봐야 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불통과 편 가르기
김 전 대통령의 소통 리더십과 통합형 용인술도 박 대통령 리더십과 대비되고 있다.
측근들이나 김영삼 정부 인사들이 김 전 대통령의 최대 장점으로 손꼽는 게 ‘소통’이다. “독대 시간이 길다보니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국민과, 주변 사람들과 소통도 굉장히 열심히 하셨던 분”(윤 전 장관)이라는 후한 평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평가는 박 대통령의 ‘불통’과 편 가르기식 국정운영, 인사 문제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으로 이어진다. 한 전 부총리는 “YS는 여백의 인간이다. 여백이 많으니, 좋은 사람의 아이디어를 얻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소통을 잘한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여백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여야 수뇌 단독회담이 없었다. 대국민 기자회견도 얼마나 했느냐”며 “대통령은 장관, 수석, 비서관을 수시로 만나 토론하고 해서 국정을 운영하는 건데 박근혜 정부에서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또 “대통령의 통합 행보가 드러나는 게 인사인데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볼 수 없는 특정 지역 편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YS 재평가는) 국민들이 그런 것들을 이심전심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