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내달 5일 '제2 광화문 집회' 금지하기로
경찰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내달 5일 1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열겠다고 신고한 ‘2차 광화문 집회’를 금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서울,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경찰청 정보국 관계자는 27일 “금지 통고 시한이 내일까지여서 면밀히 검토 중이지만 금지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은 28일 최종 결정을 내리고 전농에 금지 통고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불법 폭력 시위자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조계사 화쟁위가 제안한 회동도 거부했다.
민주노총은 “경찰의 과잉 통제와 폭력적 진압이 없는 한 평화적으로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음에도 개최 자체를 원천금지하겠다고 하니, 지나치다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압”이라고 밝혔다.
"양형 상향·실형 선고 되게" vs "위헌 논란·통과도 안된 법"
정부가 이른바 '복면금지법' 통과 전이라도 복면을 쓴 폭력 시위자는 사실상 구속 수사·실형 선고 원칙으로 엄중 처벌하겠다는 경고장을 꺼내 논란이 일고 있다.
불구속 보다 구속영장 청구, 약식기소가 아닌 정식 재판 기소, 실형 선고를 위한 항소 등에 방점을 찍은 강경 방침을 밝히면서, 입법도 안 된 법안으로 지나치게 공포 분위기만 조성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27일 담화문을 통해 “복면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폭력을 행사한 집회 참가자에 대해서는 법안이 통과되기 전이라도 이 시각 이후부터 양형기준을 대폭 상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장단체인 'IS'에 비유해 집회 참가자들의 복면을 금지해야 한다고 발언한 직후 여당이 '복면금지법'을 발의한 흐름보다 한 발 앞선 조치를 강구한 것이다.
최근 대규모 집회와 관련한 김 장관의 담화 발표는 이번이 세 번째로, 어느 때 보다 강경한 정부의 태도가 드러난다.
김 법무장관은 "익명성에 기댄 폭력시위꾼은 실형이 선고되도록 모든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법원에서 얼굴을 가린 채 경찰관을 폭행한 집회 참가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보다 무거운 징역 2년이 선고됐다는 점도 김 법무장관은 언급했다.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에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양형 부당'을 주장해 항소심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형량 결과가 나오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대변인인 김지미 변호사는 "복면금지법 자체도 위헌 소지가 있는데, 통과도 되지 않은 법안을 가지고 엄벌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의적인 판단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 "1차 집회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수사 대상이 됐고, 2차 대규모 집회가 예정된 상황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엄벌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2003년 10월 '복장의 자유도 집회의 자유'라고 판단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복면금지법과 관련해 "집회 시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한 만큼 ‘복면’이 '엄벌'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법을 무시하고 공권력을 조롱하는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집회의 자유와 인권 침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또,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대화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중재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법무부는 "불법과의 타협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무관용 원칙만 일관하고 있어 갈등의 골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이후 두 차례나 발표한 담화에서 김 장관은 시위 중 경찰의 물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 백남기씨 등에 대해서는 사과나 유감은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전 정부서도 공방 거듭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2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복면금지법안은 불법ㆍ폭력시위자를 가려내기 위한 불가피한 대책”이라며 “인권 침해 운운하며 반대하는 야당의 모습에 개탄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대단히 위축시킬 수 있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복면금지법 추진에 앞서 정부는 국민이 복면을 쓰고 거리로 나설 이유가 없도록 민생을 돌보길 바란다”며 역공을 펼쳤다.
여야 공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3년 정부가 복면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표현의 자유와 인권침해를 논란이 일면서 무산됐고, 2006년 10월에도 한차례 비슷한 집시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역시 논란 끝에 폐기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인 2009년 1월 신지호ㆍ정갑윤 의원 등이 마스크 착용 금지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때문에 상임위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진보든 보수든 여당이 됐을 때는 복면금지법을 추진했지만 번번히 야당의 반대에 부닥친 셈이다. 헌법 기관의 결정도 한몫 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3년 논란 당시 “참가자는 참가의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낸 바 있다. 마크스 착용을 금지할 수 없고, 마스크를 썼다고 해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가인권위도 2009년 당시 신지호 의원 법안으로 논란이 일자 “복면을 쓰고 집회에 참석하면 불법 폭력 집회를 하려 한다는 잘못된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어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중대하게 위축시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 논란 종식을 앞당겼다.
선진국들 복면금지? 한국과 사정 달라
새누리당은 이번만큼은 다른 기세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강도 높게 주문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박민식 의원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은 무조건 마스크 착용 금지가 아니다”며 “폭력을 은닉하기 위한 방편으로 가면을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또 해외 사례에 터를 잡아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미국,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선진국도 국가 안보와 질서 유지를 위해 복면 금지가 합헌”이라며 법안 도입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고, 정갑윤 의원도 입법조사처의 도움을 받아 복면시위를 금지하고 있는 이들 나라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이는 각국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일부 주에서 복면 착용 시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다른 사람의 권리나 특권을 침해할 목적으로 열리는 시위로 제한돼 있을 뿐 일반적인 집회나 시위의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새누리당의 법안과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의 유승희 최고위원은 “미국의 경우 하얀 고깔 모양의 두건은 쓰고 흑인 등에 테러를 자행하는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 KKK 때문에 생긴 법이고 독일의 경우도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과격한 극우 나치주의자, 홀리건 등의 폭동 등 복면 시위를 금지하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라며 “우리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