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연일 강수를 두고 있다. 안철수 의원의 전당대회 개최 제안을 거부한 문 대표는 직접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내년 총선을 진두 지휘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러면서 안 의원이 제안한 고강도 부패척결방안도 수용했다. 안 의원의 혁신안 수용을 두고 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 뒀다는 관측도 있지만 ‘안철수 칼’을 빌려 피아 불문한 인적쇄신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의 주타깃은 비주류?
문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안 의원이 제안한 10대 혁신안을 당헌ㆍ당규에 반영할 것을 제안한 뒤 추인을 받았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로 불리는 안 의원의 혁신안은 ▦부패 혐의 기소자에 대한 즉시 당원권 정지 및 공직후보 자격심사 대상 배제 ▦부패 혐의 유죄 확정자에 대한 당원 제명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문 대표는 그러면서 내년 총선 때 새로운 인물을 수혈하기 위한 인재영입위원장을 직접 맡기로 했다.
전날 안 의원의 전대 요구를 거부했던 문 대표가 느닷없이 안 의원의 혁신안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관계회복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탈당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는 안 의원을 끌어안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안 의원의 혁신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당내 현역의원 공천에 회오리바람이 불가피한데, 특히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박지원 의원 등 비주류가 타깃이 될 공산이 크다. 입법로비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신계륜ㆍ신학용 의원 등도 공천이 어려워질 수 있다. 물론 막말로 인해 징계를 받은 정청래 의원 등 주류 인사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피바람은 대체로 비주류 측에서 몰아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때문에 문 대표가 혁신안을 수용한 뜻은 ‘안 의원의 칼’을 빌어 전방위 인적쇄신에 나선다는 데 있다는 분석이 도리어 지배적이다. 문 대표가 전날 기자회견 직후 당무감사원에 비주류인 유성엽ㆍ황주홍 의원과 친노인 신기남ㆍ노영민 의원 등에 대한 엄중 조치를 지시하면서 “친노와 비노 모두 원칙 앞에 예외는 없다”고 선언한 대목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문 대표가 9월에 제시한 안 의원의 혁신안에 그 동안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다가 최근 ‘연대와 전대’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뒤에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점도 관계회복 차원으로 해석하기 힘든 대목이다. 더구나 안 의원 스스로 박지원 의원 등 당사자들이 강력 반발하자 고강도 혁신안에서 사실은 한발 물러선 상태였다. 문 대표 입장에서는 안 의원의 혁신안을 수용함으로써 안 의원의 혁신 의지가 후퇴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이중효과도 노렸을 법하다.
비주류 집단반발 속 어려운 탈당 결심
비주류는 당무거부나 당직사퇴 등을 거론하며 집단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장 주승용 최고위원이 이날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해 최고위원직 사퇴설이 번졌다.
문 대표의 이날 혁신안 수용 발표에도 비주류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안 의원 측에서도 “부패 척결과 같은 원론적인 방안을 수용한다고 국민이 감동이나 하겠느냐” “때늦은 화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도리어 문 대표가 혁신의 칼날을 비주류 쪽으로 돌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빛도 감지됐다.
그렇지만 안 의원을 포함한 비주류가 집단 탈당을 결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총선을 앞두고 명분도 세력도 역부족이라는 대체적인 분석이다. 탈당 불사의 카드를 쥐고 장고에 들어간 안 의원은 이르면 다음주초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도 저녁 내내 지역구 행사를 찾아다녔다는 그는 "지역구민들은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 중 누가 옳고 그른지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그냥 다 떠나서 단합을 좀 하라는 요구가 대부분"이라면서 "의원들이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몇달 전부터 비주류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문 대표 사퇴론에 이어 문 대표의 지난달 조선대 강연에서의 '문안박 연대'제안, 안 전 대표의 혁신전대 역제안까지 당 내홍이 끊이지 않으면서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구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총선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충청 지역의 한 의원은 "당 현안이 지역구 민심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민생이 어려우니 반(反) 정부여당 정서도 짙지만, 야당에 대해 '너희들 지금 뭐하냐'는 생각도 짙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는 "예전에는 주류와 비주류 간의 일반적인 힘겨루기로 보고 특별하게 생각지 않았던 지역민들이,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직접적으로 싸우기 시작하면서 더 실망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당 지지율이 10% 초반대밖에 안되는 곳이라 안그래도 불안한데, 이 지역 당원들 중에는 실제로 탈당하고 싶다는 사람까지 있다"고 강조했다.
'야당 텃밭'인 호남 의원들은 특히 지역구에서 당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며 강한 질책을 쏟아냈다.
전북의 한 의원은 "(문안박 연대 이슈가)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면서 "'믿었던' 주류 의원들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있다. 당내외 갈등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현 지도체제에 대한 불만도 많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표 체제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해왔던 전남의 한 의원은 "현 체제로는 안된다는 움직임이 가장 크다. 지역에서 표시하는 불만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당원은 물론 무당파들까지 걱정의 목소리를 많이 전해온다"면서 "야당이 대체세력이 되지 못할 거란 불안감이 강한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다.
또다른 중진의원은 "당에서 중진 역할을 맡고 있다보니 지역구민들이 구체적으로 (당내 갈등을 타개할) 어떤 역할을 주문하기도 하는데 문 대표와 안 전 대표가 평행선을 달리다보니 어떤 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고민이다"라며 토로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보좌관도 "지역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당의 상황을 질책하거나 걱정하는 전화가 하루에 적어도 10통은 넘게 온다"면서 "문 대표의 리더십을 질책하거나, 안 전 대표를 갈등의 원인으로 보고 현실정치에 힘쓰라는 조언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 지도체제 논란을 둘러싼 갈등을 바라보는 의원들의 시선도 곱지는 않다.
또 다른 의원은 "당이 도와주진 못해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라면서 "지역구민 중에는 차라리 나보고 탈당하라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솔직히 다들 기득권 나눠먹기 싸움에 지지 않으려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앞서 당 지도체제 논란과 혁신 이슈를 두고 비주류 세력과 줄곧 각을 세워온 문재인 대표는 지난달 광주 조선대 강연에서 '문안박 연대'를 제안하며 사실상 안 전 대표와의 공동지도체제를 제안했다.
안 전 대표는 그러나 이를 거부하면서 '혁신전대'를 역제안했고, 이를 문 대표가 4일 다시 거부하며 대신 안 전 대표의 10대 혁신안을 당헌당규에 반영하겠다고 거리좁히기에 나섰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비주류 측에서는 조직적으로 문 대표 사퇴 운동 등 당내 투쟁을 벌이 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