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13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을 선언 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가 13일 전격 탈당을 선언했다. 지난해 3월 2일 김한길 민주당 당시 대표와 창당에 합의한지 652일, 2014년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식 출범한지 628일(1년 8개월 17일)만이다.
안 전 대표는 왜 자신이 스스로 만든 당을 탈당했을까. 왜 어렵사리 만든 당을 스스로 허물고 있을까.
그는 2012년 7월 출간한 '안철수의 생각'에서 스스로의 화법(話法)에 대해 "숨은 의도도 없고 에둘러 얘기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3년 반 가까이 지났지만 그의 이런 화법은 바뀌지 않았다. 안 전 대표 측이 늘 반복하는 말이 있다. "안철수의 생각은 안철수의 말에 담겨 있다."
강한 위기 의식 속 '혁신 전대' 제안 거부에 큰 좌절
안 전 대표는 지난 12월 6일 기자회견에서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표가 거절한 '혁신 전당대회'를 받아들인 것을 재차 촉구했다. 안 전 대표는 자신이 제안했고 문 대표가 받아들인 "혁신안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는 너무 늦었다"면서 "고심 끝에 혁신전대를 제안한 것은 무너진 국민의 신뢰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을 위기로 판단했을까. 역시 6일 기자회견문에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안 전 대표는 "저의 목표는 지금도 정권교체이고, 국민의 삶을 바꾸는 정치의 변화"라면서 "지금 제가 우리 당의 혁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고,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이어 "저는 문 대표 개인과 권력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당과 야권 전체의 존망이 달린 문제를 함께 풀어가자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야당으로는 내년 총선과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읽힌다. 그에게 '혁신 전대'는 당과 야권 전체가 살아날 유일한 현실적인 방법인 셈이다.
안 전 대표는 특히 "우리 당이 어떤 야당으로 거듭나는가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저의 혁신 목표는 단순히 우리 당의 병폐를 뜯어고치는 데 있지 않다. 그 목표는 집권할 수 있는 야당을 만드는 데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방법이 '감동과 파격'이라고 했다.
그는 '혁신 전대'가 "당과 모두가 사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 길이 막히자 좌절한 것이다.
3년 6개월 전 안 전 대표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정치는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성정치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든, 국민의 열망을 대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책임감을 느꼈다"며 "제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제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철수식 정치에 대한 소명 의식이다.
이렇게 보면 안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문 대표가 당과 야권 전체가 살아날 유일한 방법을 '걷어찬' 게 된다. 자신이 제안한 낡은 진보 청산에 대해 문 대표가 "형용 모순이자 새누리당의 프레임"이라고 반박한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진 이유가 설명이 된다.
'새정치연합=낡은 체제' 인식…낡은 체제 극복에 강한 소명 의식
그렇다고 꼭 '탈당'이라는 메가톤급 카드를 꺼내야 했을까. 총선을 목전에 두고 야권 분열이라는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는 데도 말이다. 2012년 '안철수의 생각'에서 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건전한 생각을 가진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결과를 잘 만들어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함께 가져야 한다'고 했다. 개인적인 신념을 가질 뿐만 아니라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신념을 현실세계에서 이루어내야 한다는 뜻이다."(안철수의 생각, 35쪽)
즉 그에게 새정치민주연합은 더 이상 신념을 현실에서 이뤄낼 수 없는 '낡은 체제'인 셈이다. '리더'로서의 분명한 자각과 각성이 생긴 안 전 대표에게 이제 새정치연합은 혁신을 이뤄낼 수 없는 낡은 체제인 것이고, 탈당을 해서 제3지대에서 이를 강제적으로라도 이뤄내야 할 과제가 된 것이다.
또 안 전 대표는 '확고한 결심'이 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번 자신의 탈당 선언이 미칠 후폭풍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 리 없다.
"살아오면서 진로에 대한 선택이 필요할 때마다 비교적 '짧고 깊은 고민'으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지만 정치 참여 문제는 혼자 판단할 수 있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의 결정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내 삶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었지만, 이 문제는 국가 사회에 대해 너무나 엄중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 기대를 거는 분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내가 가진 생각이 그분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인지, 또 내가 그럴 만한 최소한의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철수의 생각, 5~6쪽)
요새 정치권에서는 그를 '강철수'(강한 안철수)라고 불렀다. 늘 양보하던 모습을 보이던 그가 단단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면 안 전 대표에게 '탈당'은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책임을 지는 일이 된다.
"실수 반복 안해…성공 가능성은 고려 안해"
그렇다면 과연 안 전 대표가 선택한 길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저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의미 있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가'의 세 가지만 생각했고 성공 가능성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지금도 같은 입장이다"(안철수의 생각, 33쪽)
즉 그에게 새정치연합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열정도 지속할 수 없다. 잘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렇기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탈당은 '실수'가 결코 아니다. 그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정치 경험 부족에 따른 실수 우려'에 대해 이렇게 반박한다.
"절대로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았고 실수를 통해서 배워나갔다. 교수가 된 후에도 처음엔 강의를 잘 못했는데, 부족한 부분을 계속 메모하고 고쳐나가서 결국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최고 수준의 강의평가를 받는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타입인 거다."
안 전 대표는 회견에 앞서 문재인 대표와 10분 가량 통화를 하며 최종 담판에 나섰지만 자신이 주장한 혁신전대 개최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해 11시 회견을 강행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표는 회견 전 안 전 대표와의 통화에서 "만나서 대화하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며 혁신전대를 포함한 모든 방안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혁신전대 수용을 선언한다면 세부적인 것은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지만 문 대표로부터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안 전 대표는 문병호 의원과의 통화에서 11시 회견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의원은 "문 대표는 만나서 상의해보자는 데 혁신전대 수용에 대한 뚜렷한 답변도 없이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 전에 문 대표와 회동할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9시40분께 상계동 자택을 출발해 국회로 향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국회에 가서 얘기하겠다"고만 짧게 말했다.
앞서 중재에 나선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은 문 대표를 구기동 자택에서 만나 "일단 혁신전대를 수용한 뒤 전당대회 합의추대 등 형태로 절충점을 찾아보자"는 입장을 전했고, 문 대표는 "만나서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논의해볼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박 전 부의장은 이를 안 전 대표에게 전화로 전했고, 안 전 대표는 "문 대표와 통화해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수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1988년 서울대 박사 과정 중 '브레인 바이러스'를 접한 뒤 7년 동안 컴퓨터 백신을 연구했다. 1995년 ㈜안철수연구소(안랩)를 설립하고 10년간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여론조사에서 1위를 보였으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이듬해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진통 끝에 예비후보를 사퇴했다. 이후 2013년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 출마해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민주당과 통합,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김한길 의원과 함께 공동대표에 취임했으나 2014년 보궐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